지장경 읽기
- 지장경-제1. 도리천에서 신통을 보이다. [忉利天宮神通品]
- 지장경-제2. 분신들을 모으다 [分身集會品]
- 지장경-제3. 중생들의 업을 인연을 관찰하다 [觀衆生業緣品]
- 지장경-제4. 염부제 중생들의 업으로 느낌 [閻浮濟衆生業感品]
- 지장경-제5. 지옥들의 이름 [地獄名號品]
- 지장경-제6. 여래가 찬탄하시다 [如來讚歎品]
- 지장경-제7.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이익함 [利益存亡品]
- 지장경-제8. 염라왕들이 찬탄하다 [閻羅王衆讚歎品]
- 지장경-제9.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라. [稱佛名號品]
- 지장경-제10. 보시한 공덕을 헤아리다 [校量布施功德緣品]
- 지장경-제11. 땅의 신들이 법을 보호하다 [地神護法品]
- 지장경-제12. 보고 듣는 이익 [繭門利益品]
- 지장경-제13. 사람들에게 부촉하다 [囑累人天品]
지장보살의 분신이란
분신집회품에서 분신이란 말은 지장보살의 몸이 여러 개로 나누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지장보살이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중생들을 다 제도할 수 없기 때문에 몸을 나누어서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분신집회품은 그 많은 지장보살의 분신들을 모아서 한 곳에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분신집회품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다시 말해 분신집회품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법회를 여실 때 지옥의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을 나투어서 교화하던 지장보살들이 모두 모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장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하는데 그 몸은 여럿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여럿입니다. 지장보살의 나투신 몸은 여럿이지만 하나가 여럿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결국은 하나입니다. 또 하나이지만 여러 분신으로 나투었으므로 하나가 아닙니다.
인연법을 기초로 하는 불교의 공사상에서 보면 어떤 개체는 독자적인 자성(自性)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해 있으므로 독자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독자성이 없다는 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독자성이 없다는 것을 뒤집어서 표현하면 세상의 모든 사물 하나하나에 빠짐없이 한 개체를 이루는 것이 직접, 간접으로 들어있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가 모든 것 속에 있다는 의미에서 하나는 다시 여럿이 됩니다. 상호의지해서 있게 되는 상대적 연관존재를 독자적인 하나의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의 모든 것의 직접, 간접영향력이 다 들어있다는 점에서 모두 갖추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이 여럿과 하나의 몸을 자유자재로 나타낸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비어있음과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원리에서 볼 때 지장보살은 하나의 집회와 분신의 여럿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 자신은 바로 지장보살의 분신이 되고 지장보살은 바로 우리의 분신이 됩니다. 단지 지장보살은 분신과 집회를 자유자재로 하는 반면에 우리는 분신과 집회를 알지도 못하고 자유자재로 할 수 없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부처님과 지장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남녀노소, 산하대지 등 모든 곳에서 몸을 나투십니다. 똑똑한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못난 사람에게도 그 모습을 나투십니다. 그래서 하늘, 구름, 산, 강 그리고 지금의 방황하는 모든 중생에게 바로 부처님과 지장보살의 분신이 나투시고 우리가 바로 지장보살과 부처님의 분신 옆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분신집회품의 대강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분신집회품의 줄거리 - 석가모니 부처님 앞에 모든 중생들이 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앞에 지장보살의 모든 분신과 지장보살의 분신들이 교화해서 해탈시킨 모든 중생들이 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중생들을 교화해 오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제도되지 않아서 백천만억의 여러 형태의 분신과 방편을 써서 각기 다른 근기들을 제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는 중생이 있으니 내 이후에 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그들을 해탈시키도록 하라.”
그때 모든 세계에 나투었던 지장보살의 분신은 다시 한 몸을 이루어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오랜겁이래로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 많은 분신을 나투어 중생을 교화하되 중생들이 부처님 법가운데서 착한 일만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마침내 큰 불과를 얻겠습니다. 후세의 악업 중생에 대해서 염려하지 마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에게 서원을 성취하고 마침내 불도를 이루리라고 말씀하시며 수기를 내리십니다.
이상과 같이 대강의 줄거리에서 살펴보았듯이 지장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하려는 서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분신이 많은 이유
지장보살의 원력과 신통력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지장보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지장보살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뜻도 됩니다. 부처님도 천백억 화신이라 해서 수천, 수만 개의 모습으로 변화해서 몸을 나투십니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분신이 필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진대 지장보살은 중생들의 고통을 보면 분신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클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도 삼십이 응신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불보살은 많은 몸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중생들의 근기와 중생들의 처지와 중생들의 사정에 맞추어서 몸을 나투어 교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보살이 분신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부처님의 모습이나 지장보살의 모습이 직접 나타나서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 불보살님은 때때로 친구의 모습으로 혹은 친구의 입을 통해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을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 또 아내의 모습이나 남편의 모습, 혹은 자식의 모습으로 나타나 미혹한 중생을 깨우쳐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게 바로 지장보살의 화신이고 관세음보살의 화신이고 부처님의 화신입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이야기할 때 천수천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중생들을 얼마나 보살펴야 하기에 천의 눈과 천의 손이 되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지장보살이 분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지장보살의 원력의 위대함을 잘 음미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지장보살이 분신하지 않도록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장보살의 원력을 우리의 마음속에 바로 새겨야 합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원력이야말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원력은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거대한 마음의 힘으로 작용하여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게 합니다.
우리의 실체는 진여불성이다
우리의 실체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기 때문에 인간의 참모습은 누구도 파악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개발해서 쓰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신의 무한한 능력에 대한 이해와 신념이 확고하다면 어떤 처지도 다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고 불교를 공부하면서 자신의 무한한 잠재능력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은 가장 큰 소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잠재능력과 관련된 한 가지 이야기
1846년 무렵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이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심리학의 최고 권위자였으며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렸습니다. 그 사람은 불교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인류사에 있어서 최대의 발견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잠재의식의 존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잠재의식의 힘이야말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설파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잠재의식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 혹은 진여불성을 의미합니다. 그 심리학자는 인간의 잠재의식에 대해서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특별한 생각을 갖지 않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잠재의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근본 마음자리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것에 대한 확신과 믿음은 자신의 삶을 결정 지우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경전에서는 범유신자(凡有信者) 개득작불(皆得作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는 자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학벌이 좋고 나쁘며, 재산이 있고 없으며, 명예가 높고 낮은 것과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바른 소견을 갖고 본래의 마음자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자리의 위력이 이처럼 엄청난데 세속적인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가끔 신문지상에서 나이 많은 노인이 검정고시를 거뜬히 합격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이란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인 것입니다. 인간의 불가사의한 일은 종종 일어나는데 그것은 결국 인간의 잠재된 힘에 대한 확신과 믿음 때문입니다. 많은 성인들이 인간의 마음자리를 찾는 일에 평생을 매달렸습니다. 마음자리 하나 제대로 발견해서 잘 쓰려고 했던 것입니다. 부처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며 수많은 역대 조사 스님들도 모두 마음자리 찾는 공부를 평생동안 했습니다.
지장경에서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거듭 강조하지만 강한 원력입니다. 강한 원력이야말로 당당하고 힘찬 자신의 인생을 펼쳐 가는 원동력입니다. 그것은 곧 진여불성 자리와 상통합니다. 우리가 사람이라고 할 때 그냥 인간이 아니라 불성을 소유한 인간이야말로 참 인간입니다. 지장경에서 펼쳐 보이는 지장보살의 큰 원력은 지장보살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불교공부의 참의미가 있습니다. 지장경을 독송하든지 지장경을 공부하든지 간에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지장보살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강인한 원력, 곧 생명력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장보살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마음 깊은 자리로부터 불끈 솟는 그런 생명력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 뜨거운 열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자신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지장보살의 정신을 자신의 정신으로 받아들였을 때 지장경 공부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장보살 분신들과 중생들이 도리천에 모여 있었다
본문
爾時에 百千萬億不可思不可議不可量不可說無量阿僧祇世界所有地獄處에 分身地藏菩薩이 俱來集在忉利天宮이러니 以如來神力故로 各以方面에 與諸得解脫하여 從業道出者亦各有千萬億那由他數라 共持香華하여 來供養佛하니라 彼同來等輩는 皆因地藏菩薩敎化하야 永不退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是諸衆等이 久遠劫來로 流浪生死하여 六道受苦에 暫無休息이라가 以地藏菩薩의 廣大慈悲深誓願故로 各獲果證이라 旣至忉利하여 心懷踊躍하여 瞻仰如來하여 目不暫捨러니러니
해석
그때 백천만 억이나 되는 생각할 수도 없고 의논할 수도 없으며 헤아릴 수도 없는 무량 아승기 세계에 있는 지옥처소에 몸을 나누어 계신 지장보살이 함께 도리천궁에 모여 있었으며, 여래의 신력 때문에 각각 그 방면에서 모든 해탈을 얻어서 업도로부터 벗어난 자 또한 각각 천만 억 나유타수가 있었다.
모두 향화를 가지고 와서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니 저 모든 함께 온 무리들도 다 지장보살의 교화로 인하여 영원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진하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모든 무리들은 구원겁에서부터 생사에 유랑하면서 육도에서 받는 고통이 잠시도 휴식이 없다가 지장보살의 넓고 큰 자비와 깉은 서원 때문에 각각 과정을 얻게 되었는데 이미 도리천에 이르러서는 마음속에 뛸듯한 기쁨을 품고 여래를 첨앙 하여 눈을 잠시도 떼지 않았다.
풀이
여기서는 많고 많은 지옥마다 다 지장보살이 있었고 그들이 다 함께 도리천에 모여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지장보살이 모여 오니까 지장보살을 통해 교화를 받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오는 그런 모습입니다.
지장보살을 따르는 모든 무리들이 오랜 세월 전부터 함께 생사에 유랑하면서 육도에서 받는 고통 때문에 잠시도 쉴 수 없다가 지장보살의 자비와 서원 때문에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천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뛸 듯이 기뻐 부처님을 우러러 뵈면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지장보살을 따라와 도리천에 와서 부처님을 뵙게 되어 모든 대중들이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중생들을 위해 방편을 베풀다
본문
爾時世尊이 舒金色臂하시어 摩百千萬億不可思不可議不可量不可說無量阿僧祇世界諸化身地藏菩薩摩訶薩頂하시고 而作是言하시되 吾於五濁惡世에 敎化如是剛强衆生하여 令心調伏하여 捨邪歸正하되 十有一二는 尙在惡習일새 吾亦分身千百億하여 廣說方便하노라
해석
그때에 세존께서는 금색 팔을 펴서 백천만억의 생각할 수도 없고 의논할 수도 없으며 헤아릴 수도 없고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량 아승기 세계의 모든 화신 지장보살마하살의 이마를 만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오탁악세에서 이와 같은 강강한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조복 하여 삿됨을 버리고 바른 곳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나 열에 하나나 둘은 아직도 악한 습관이 남아 있구나. 내 또한 몸을 천백억으로 나누어 널리 방편을 베푼다」
풀이
이 부분은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당부의 말을 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곳곳에서 장애를 만나고 인생 굽이굽이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 어떤 새로운 각오나 희망, 꿈으로 새로 시작하게 됩니다. 어려움과 장애를 극복하는 꿈과 희망이 바로 원력입니다. 말하자면 원력은 새로운 꿈이요, 희망이요, 기대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런 원력이 없으면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하면 곳곳에 수많은 지장보살이 있어서 개인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꿈과 희망과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장보살의 원력입니다.
내일이 있다는 것, 또한 내일은 보다 나은 삶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원력과 통했을 때는 무한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원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상황도 헤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막연한 기대감, 희망, 꿈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쉽게 파괴시켜 버립니다. 우리가 집안이 어려움에 당하고 사업이 망했다고 해서 금방 죽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먹고 다시 일어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은 곧 생명력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근본 되는 힘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꿈은 정말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불공을 잘 드리는 한 가지 방법
원력과 관련지어 우리가 불공을 잘 들이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불공을 드리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사대건강과 육신청정을 빌고 난 뒤 마음의 소원과 원하는 바가 모두 충전되어 원만 성취하라고 큰소리로 축원을 들이는 것입니다. 축원을 잘해주는 불공이야말로 최상의 불공입니다. 축원이란 그 사람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불공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축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축원은 바로 생명력입니다. 축원은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어떤 원초적인 힘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축원은 생명력에 불을 지펴주는 불씨와 같습니다.
축원을 잘한다는 것은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일에 불을 지펴주어 생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불교의식의 대부분도 원을 발하는 것입니다. 축원을 하는 것도 심리적으로 가만히 관찰해 보면 우리가 살아있는 삶의 기본 힘이 바로 원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지장보살이 곳곳에 있고 지장보살의 강인한 원력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희망감, 기대감, 꿈이 없으면 사람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어떤 경우의 사람이라도 꿈이 없는 그 순간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십 대라고 하더라도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결코 젊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원력을 가지면 그 자체로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됩니다.
오탁악세에서 번뇌로 가득 찬 중생들을 교화하다
그러면 본문에서 부처님의 당부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탁악세에서 말 안 듣고 고집 세고 자기 멋대로 하는 그런 중생을 교화하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오탁악세란 여러 가지 형상들이 흐려져 있다는 말입니다. 시대가 흐려져 있고 소견이 흐려져 있고 또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흐려져 있어 번뇌가 더 지독하고, 중생들의 열등의식도 더 높아지는 시대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겁탁, 견탁, 번뇌탁, 명탁, 중생탁 이렇게 다섯 가지가 모두 흐려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或有利根은 聞卽信受하고 或有善果는 勤勸成就하며 或有暗鈍은 久化方歸하고 或有業重은 不生敬仰이라 如是等輩衆生이 各各差別일새 分身度脫하되 或現男子身하며 或現女人身하며 或現天龍身하며 或現鬼神身하며 或現山林川源과 河池泉井하여 利及於人하여 悉皆度脫하며 或現帝釋身하며 或現梵王身하며 或現轉輪王身하며 或現居士身하며 或現國王身하며 或現宰輔身하며 或現官屬身하며 或現比丘하며 比丘尼優婆塞優婆夷身과 乃至聲聞羅漢辟支弗菩薩等身하여 而以化度하노니 非但佛身으로 獨現其身이니라
해석
「혹 이근이 있는 자는 들으면 곧 신수할 것이며, 혹 선과가 있는 자는 부지런히 권하여 성취시킬 것이며, 혹 암 둔한 자는 오래 교화해야 그때 가서 귀의할 것이며, 혹 업이 중한 자는 경앙심을 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중생은 각각 차별이 있으므로 몸을 나누어 도탈 할 것이다. 혹은 남자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여인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천룡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귀신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산림과 천 원과 하지와 샘과 우물로 나타나서 이로움을 사람들에게 미치게 하여 도탈 할 것이며 혹은 제석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범왕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전륜왕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거사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국왕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재상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관속의 몸으로 나타나며, 혹은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와 내지 성문과 나한과 벽지불과 보살 등의 몸으로 나타나서 화도 할 것이며 비단 부처님의 몸으로만 홀로 그 몸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풀이
여기서 부처님의 당부 말씀이 계속 이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을 천백억 화 신으로 나투어 널리 방편을 베풉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말씀이나 경전에 있는 말씀을 듣자마자 그 말이 맞다고 공감하고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영리한 근기를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또 선근이 있는 사람은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리한 근기인 이근을 가진 자와 선근이 있는 선과가 있는 자는 방편을 듣고 바로 실천에 옮긴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둔하고 캄캄한 근기를 가진 자는 오래 교화해야 귀의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꾸 듣고 반복해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크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불교 공부는 콩나물을 키우는 도리와 같습니다. 콩나물을 키우려면 위에서 끊임없이 물을 부어야 합니다. 물은 콩나물을 통과해서 모두 빠져나가 버리지만 언젠가는 콩나물은 자라게 됩니다. 물이 빠지는 걸 보면 콩나물이 자랄 것 같지 않지만 언젠가는 콩나물이 쑥쑥 자라게 됩니다.
불교 공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경전 말씀이 한 구절도 기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되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우리의 공부가 쌓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시절인연이 맺어지면 우리의 수행과 공덕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암 둔한 자는 오래 교화해야 그때 가서 귀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업이 무거운 자는 우러러 존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은 각각 차별이 있음으로 불보살이 몸을 분신하여 제도해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몇 가지 분신
여기서 지장보살의 몇 가지 분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때로는 남자의 몸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여인의 몸으로 나타납니다. 또 천룡이나 귀신의 몸으로 나타나며 또한 온갖 자연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여 제도한다고 했습니다. 또 제석천의 몸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혹은 범왕의 몸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전륜왕의 몸이나 거사의 몸으로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재상 혹은 벼슬아치,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 성문과 나한, 벽지불과 보살 등의 몸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몸으로 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주위에 어떤 분신이 나타나 곁에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때로 나를 애먹이는 사람이 지장보살의 화신일 수도 있고 나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지장보살의 화신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인연들이 불보살의 화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
汝觀吾累劫에 勤苦度脫如是等難化剛强한 罪苦衆生하라 其有未調伏者는 隨業報應하여 若墮惡趣하여 受大苦時어든 汝當憶念吾在忉利天宮하여 慇懃付囑하여 令娑婆世界로 至彌勒出世已來히 衆生悉使解脫하여 永離諸苦하고 遇佛授記케하라케하라
해석
「네가 내 누겁동안 부지런히 고생하면서 이와 같은 교화하기 어려운 강하고 굳센 죄고 중생을 도탈 시킨 것을 보아라. 그래도 조복 되지 못한 자가 있어 죄고에 따라 과보를 받게 되는데 만약 악취에 떨어져서 큰 고통을 받을 때에는 너는 마땅히 내가 도리천궁에서 은근히 부촉하던 것을 생각해서 사바세계로 하여금 미륵이 출세할 때까지의 중생을 모두 해탈시켜서 영원히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도록 하라」고 하셨다.
풀이
본문에서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다스려 삿됨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나 둘은 아직도 악한 습관이 남아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부처님의 당부의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부지런히 고행하면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제도시킨 것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교화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몸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자가 있으면 죄에 따라 과보를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또 중생들이 악취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을 때에는 도리천궁에서 부촉하던 것을 생각해서 사바세계로 하여금 미륵이 출생할 때까지 모든 중생을 해탈시켜서 영원히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도록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금까지 부처님은 지장보살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힘이 다하여 중생을 제도할 수 없게 된 때가 되었으니 이제는 지장보살로 하여금 미륵 부처님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고 당부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 중에는 지금의 시대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시대는 끝나고 미륵 부처님이 출현해서 중생을 구제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지장보살의 교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미륵 부처님이 출현하면 그때 중생을 제도하는 임무를 넘겨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통 불교에서는 미륵 부처님의 출현을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오십육억 칠천만 년 후에 온다고 하였습니다. 미륵교를 믿는 사람들은 삼천 년 뒤에 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직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법이 살아 있고 현재 많은 불자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중생교화는 지장보살이 맡아하고 불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부촉하신 것으로 제도하고 있습니다. 미륵 부처님이 올 때는 석가모니의 불법이 약해져서 거의 사라진 상태가 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불자들 사이에 잘못된 소견을 갖고 그것을 그대로 믿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점은 우리가 경계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불교의 바른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불교 안에서도 그런 삿댄 가르침을 접할 우려가 있으므로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삿댄 가르침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견문을 넓혀야 합니다. 불교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자기 판단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그때 분신 했던 수많은 지장보살이 하나의 형상으로 돌아와서 부처님께 말합니다. 지장보살은 오랜 세월부터 불가사의한 위신력을 얻어 백천만억의 분신이 온세계에 가득하고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이 슬픈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다
본문
爾時에 諸世界化身地藏菩薩이 共復一形하여 涕淚哀戀하여 而白佛言하되 我從久遠劫來로 蒙佛接引하여 使獲不可思議神力하여 具大智慧일새 我所分身이 遍滿百千萬億恒河沙世界하여 每一世界에 化百千萬億身하고 每一化身에 度百千萬億人하여 令歸敬三寶하며 永離生死하여 至涅槃樂케하되케하되 但於佛法中所爲善事에 一毛一滴과 一沙一塵과 或毫髮許라도 我漸度脫하여 使獲大利케하리니케하리니 唯願世尊하 不以後世惡業衆生爲慮하소서 如是三白佛言하되 唯願世尊하 不以後世惡業衆生爲慮하소서 爾時에 佛이 讚地藏菩薩言하시되 善哉善哉라 吾助汝喜하노라 汝能成就久遠劫來로 發弘誓願하여 廣度將畢하고 卽證菩提케하라케하라
해석
그때에 여러 세계에 화신 했던 지장보살이 다시 하나의 형상으로 돌아와서 슬픈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구원겁으로부터 지금까지의 부처님의 접인하 심을 입어서 불가사의한 신력을 얻고 큰 지혜를 갖추었으므로 저의 분신이 백천만억의 항하사 세계에 가득하오며 한 세계마다 백천만억의 몸으로 화하여서 한 세계마다 백천만억의 사람을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삼보에 귀의하여 공경하게 하며, 영원히 생사를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하되 다만 불법 가운데서 선한 일을 한 것은 터럭 한 개, 물 한 방울, 모래 한 알, 티끌 한 개와 털끝 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제가 점차 도탈 하여 그들로 하여금 큰 이로움을 얻도록 할 것이오나 다만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후세에 악업을 짓는 중생을 가지고는 심려하지 마시옵소서」하고 이와 같이 세 번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후세에 악업을 짓는 중생을 가지고는 심려하지 마시옵소서」라고 아뢰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을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선하구나, 선하구나. 내 너의 기쁨을 도울 것이니 너는 능히 구원겁으로부터 큰 서원을 발한 것을 성취하고 널리 제도함을 마친 뒤에 곧 보리를 증하게 하라」고 하시었다.
풀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때 여러 세계에 화신 했던 지장보살이 하나의 형상으로 돌아와서 슬픈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물었다고 했습니다. 또 지장보살은 오랜 세월 동안 부처님께서 가까이서 가르침을 주심에 힘입어서 불가사의한 위신력을 얻고 큰 기회를 갖추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지장보살은 자기의 분신이며, 백천만억의 수많은 세계에 가득하여 한 세계가 백천만억의 몸으로 변하여 한 세계마다 백천만억의 사람을 제도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삼보에 귀의하여 공경하도록 하며 생사를 떠나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했다고 말합니다.
중생이 지장보살의 강인한 원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
여기서부터 중요한 내용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수많은 중생이 악업을 짓고 있지만 부처님께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장보살의 강인한 원력만 있으면 그동안 지은 악업이 다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처의 소질을 가지고 있는 불성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많고 업장이 좀 두텁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장보살의 큰 원력은 아무리 업장이 깊고 넓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작은 돌이라도 그냥 던지면 바로 물에 빠지지만 큰 돌이라도 배에 실으면 빠지지 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죄를 짓고 살더라도 강인한 원력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죄업은 문제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법 가운데서 선한 일을 한 것은 물 한 방울, 터럭 한 개, 모래 한 알, 티끌 한 개와 털끝만 한 것이라도 지장보살은 중생을 제도하여 큰 이로움을 얻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속에는 아주 작은 선근으로 복을 짓고 인연을 맺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제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선근을 가지고 해탈을 얻는 그런 원리가 이 내용 속에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부처님과 인연 맺은 것보다 죄업을 쌓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선근만 있어도 지장보살은 중생들을 다 교화하고 제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큰 산을 성냥 하나로 태울 수 있듯이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선근 하나만으로도 크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부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작은 불씨가 큰 화를 가지고 오지만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작은 것을 잘 발전시키고 개발하면 큰 깨달음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업장과 죄업이 천만 개가 된다고 해도 그 가운데 착한 선근이 한 개만 있으면 착한 불씨가 번지고 번져서 천 만개의 악한 업장을 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을 꼭 가져야 합니다. 불교의 이치는 이와 같이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입니다.
우리의 착한 일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이 인연이 된다면 우리의 업장은 한꺼번에 다 소멸될 수가 있다고 지장보살이 자신하고 부처님이 확신했습니다. 지장보살이 부처님께 세 번이나 후세에 악업을 짓는 중생을 자신이 제도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원리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을 칭찬하며 지장보살이 원력을 세우는 것을 돕겠다고 말씀합니다. 지장경이 지옥과 죄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마음의 걱정, 근심, 염려가 한꺼번에 녹아지는 듯합니다. 여기까지가 지장보살의 분신이 모여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분신집회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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