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 읽기
- 지장경-제1. 도리천에서 신통을 보이다. [忉利天宮神通品]
- 지장경-제2. 분신들을 모으다 [分身集會品]
- 지장경-제3. 중생들의 업을 인연을 관찰하다 [觀衆生業緣品]
- 지장경-제4. 염부제 중생들의 업으로 느낌 [閻浮濟衆生業感品]
- 지장경-제5. 지옥들의 이름 [地獄名號品]
- 지장경-제6. 여래가 찬탄하시다 [如來讚歎品]
- 지장경-제7.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이익함 [利益存亡品]
- 지장경-제8. 염라왕들이 찬탄하다 [閻羅王衆讚歎品]
- 지장경-제9.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라. [稱佛名號品]
- 지장경-제10. 보시한 공덕을 헤아리다 [校量布施功德緣品]
- 지장경-제11. 땅의 신들이 법을 보호하다 [地神護法品]
- 지장경-제12. 보고 듣는 이익 [繭門利益品]
- 지장경-제13. 사람들에게 부촉하다 [囑累人天品]
지옥의 이름들을 열거하다
지옥명호품에서는 보현보살의 요청을 받고 지장보살이 악한 업의 과보로 받게 되는 지옥의 이름들을 열거합니다.
지옥의 이름들은 고통받는 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옥의 이름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칼의 비도지옥(飛刀地獄), 불붙은 화살의 화전지옥(火箭地獄), 불똥이 떨어지는 유화지옥(流火地獄), 소가 혀를 갈거나 혀로 밭을 가는 경설지옥(耕舌地獄), 따지는 것으로 시작해서 따지는 것으로 끝나는 쟁론지옥(爭論地獄), 화만 내는 다진지옥(多瞋地獄),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 오물만 있는 분뇨지옥(糞尿地獄), 피를 마시는 음혈이 옥(飮血地獄) 등입니다.
그런데 한 지옥에는 많은 종류의 지옥을 포함하고 있고 각각에 속한 하나하나의 지옥에는 다시 백천 가지의 형벌 기구와 고초가 있습니다.
지옥의 명칭을 말한 지장보살은 아직도 염려가 되어서 지옥의 고초를 다시 한번 풀어서 설명합니다. 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지옥은 죄인의 심장을 빼내어 야차가 먹게 하고, 어떤 지옥은 죄인을 끓는 가마솥에 삶고, 어떤 지옥은 죄인을 벌겋게 달군 쇠기둥을 안게 하고, 어떤 지옥은 찬 얼음뿐이고, 어떤 지옥은 무쇠 나귀를 끌게 합니다.
여기서는 죄업에 대한 과보를 아주 무섭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경이나 불법을 비방하는 죄 이외에도 인륜도덕을 어긴 죄업의 과보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경 전체의 경향이나 불교 일반은 죄업에 따라 과보로 죄를 지어서 선행을 하기 보다는 다겁생래의 인연을 알려서 현재의 한 공간적, 시간적 지점을 전체와 연결 지어서 보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다겁생래의 인연을 한꺼번에 보면 지금의 고통이 괴롭기는 하지만 억울한 것은 아니고 또 선행을 하면 바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괴롭지만 그 괴로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고 나아가서는 우주 전체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인연법은 죄업에 대한 과보를 말하면서도 아울러 공사상과 유심조(唯心造) 사상으로 연결됩니다. 죄업이나 과보가 고정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지어서 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업을 선업으로 돌릴 수 있고 죄업을 받으면서도 극락을 살 수가 있습니다.
선에서는 인과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과에 어둡다라는 말로 죄보와 공사상 유심사상과의 상관관계를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명호품에서는 한 지옥에 다시 여러 지옥을 포함하고 있고 각기 지옥에 다시 백천 개의 여러 가지 고초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연법, 공사상의 궁극적 결론이 되는 구(具) 사상을 나타내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는 죄업의 과보를 강조해서 근기가 낮은 중생을 대상으로 말하기 때문에 지옥 속에 극락을 말할 수 없지만 그 착상이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지옥의 명호와 죄보에 대한 일을 말하다
본문
爾時普賢菩薩摩訶薩이 白地藏菩薩言하시되 仁者여 願爲天龍八部와 及未來現在一切衆生하시어 說娑婆世界와 及閻浮提罪苦衆生의 所受報處地獄名號와 及惡報等事하시어 使未來世末法衆生으로 知是果報케하소서 地藏答言하되 仁者여 我今에 承佛威神과 及大士之力하여 略說地獄名號와 及罪報之事하리이다 仁者여 閻浮提東方에 有山하되 號曰鐵圍니 其山黑邃하여 無日月光하고 有大地獄하되 號極無間이니라
해석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지장보살게 아뢰기를 「인자여 원컨대 천룡팔부와 미래와 현재의 일체중생을 위하여 사바세계와 염부제의 죄고중생이 죄보를 받는 곳인 지옥의 명호와 악보 등의 일을 설하여 미래세의 말법 중생으로 하여금 이 과보를 알게 하십시오.」 하니 지장보살이 대답하기를 「인자여, 내 지금 부처님의 위신과 대사의 힘을 이어 지옥의 명호와 죄보에 대한 일을 대략 말하겠습니다.
인자여, 염부제의 동쪽에 산이 있는데 이름을 철위산이라 하며 그 산은 어둡고 깊어서 해와 달의 빛이 없으며 큰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극무간이라 한다.」
풀이
여기서는 보현보살이 지장보살에게 지옥의 명호와 악에 대한 과보를 설하여 미래 세계의 말법 중생으로 하여금 과보에 대해서 알게 해달라고 묻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미래의 중생들에게 지옥의 무서움을 알려주어 다시는 그런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자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명호와 죄업으로 받는 과보를 말하게 됩니다.
첫 번째 지옥으로 철위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철위산은 어둡고 깊어서 해와 달의 빛이 없으며 거기에는 이른바 큰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극무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둡고 깊어서 해와 달이 없다는 말은 빛과 어둠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옥은 광명이 없는 세계인 것입니다.
광명은 바로 진리의 빛입니다. 결국 진리의 빛이 없는 곳이 지옥이란 말입니다. 지옥은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캄캄하게 사는 그런 세상입니다.
반대로 극락세계는 지혜의 빛이 넘쳐나는 그런 곳입니다. 부처님께서 주로 사는 곳이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어리석어서 캄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지옥의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반대로 지혜의 빛이 번득여서 슬기롭고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극락세계를 누리고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마음으로부터 지혜의 빛을 발하는 일입니다. 성불을 한다는 것도 결국 어두운 마음의 껍질을 깨뜨리고 지혜광명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는 마음이 밝아지도록 하는 이치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깨달아서 마음으로부터 지혜가 표출되도록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으로부터 지혜의 빛이 있을 때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고 어리석을 때는 반드시 상처받게 되어 있습니다. 상처받은 기억을 되살려 보면 그것은 전부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받는 것은 어두움 때문입니다. 어둠이 사라진 곳이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相)으로 덮여서 우리의 밝은 마음이 가리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캄캄합니다. 상이 떠나버리면 밝은 마음은 자연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부처라고 말합니다. 불교는 바로 우리들 마음에 등불을 밝혀서 조금이라도 슬기롭게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대낮처럼 환한 길로 인생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 마음의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길을 가는데도 마음으로부터 아무런 지혜가 없다면 정말 난감한 인생이 되고 한 걸음 한 걸음 전부가 상처투성이고 피투성이 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을 밝히는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에서 철위산 동쪽에 햇빛도 달빛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곳에 지옥이 있다는 말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어리석은 어둠이 내릴 때 그 순간 상처받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마음에 어리석은 어둠이 드리워질 때 가슴을 오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생 속병을 앓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인생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둠으로 상처받았던 곳은 때때로 세월이 지나면 상처가 아문 듯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인연을 만나면 그 아물었든 상처가 다시 아프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완전히 낳게 하는 방법은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섭섭했던 마음도 훨씬 가벼워집니다. 지혜란 늘 필요한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어둡기 시작하면 무조건 지옥으로 접어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지면 그 어두운 마음으로부터 온갖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부정적인 입장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모든 것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지옥세계의 일만 벌어지는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지옥을 소개하다 -1
본문
又有地獄하니 名曰大阿鼻요 復有地獄하니 名曰四角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飛刀요 復有地獄하니 名曰火箭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夾山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通槍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鐵車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鐵床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鐵牛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鐵衣요 復有地獄하니 名曰千刃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鐵驢요 復有地獄하니 名曰洋銅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抱柱요 復有地獄하니 名曰流火요 復有地獄하니 名曰耕舌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剉首요 復有地獄하니 名曰燒脚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啗眼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鐵丸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諍論이요 復有地獄하니 名曰鐵銖요 復有地獄하니 名曰多瞋이니다
해석
「또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대아비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사각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비도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화전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협산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통창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철거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철상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철우가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철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천인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철려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양동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포주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유화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경설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좌수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소각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담안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철환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쟁론이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철수라 하며,
다시 지옥이 있는데 이름을 다진이라 합니다.」
하고 말했다.
풀이
여기서도 계속해서 온갖 종류의 지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지옥의 종류를 대아비 지옥, 사각지옥, 비도지옥, 화전지옥의 순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도지옥은 칼이 날아다니는 지옥이고 화전지옥은 불화살이 날아다니는 그런 지옥을 말합니다. 실제로 칼과 불이 날아 다니는 지옥을 형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불로 지르는 듯한 아픔의 세계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도지옥은 결국 칼로 가슴을 오리고 살을 저미는 듯한 그런 아픔을 겪는 지옥을 말합니다. 또 화전지옥은 불화살이 날아다니는 지옥이라 했는데 실제로 가슴이 불로 가득 찬 듯한 그런 느낌은 수없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표현된 비도지옥, 화전지옥은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지옥을 소개하고 있는데, 협산지옥, 통창지옥, 철거지옥이 있습니다. 협산지옥은 산이 첩첩이 있어서 양쪽에서 산이 사람을 압착하는 그런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지옥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가지 못하고 옴짝달싹 할 수도 없게 되어 사정없이 우리의 목을 조아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또 누가 몸뚱이로 때리거나 쫓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지옥의 세계는 모두 우리의 경험을 이야기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통창지옥은 창으로 를 앞뒤로 쑤셔서 뚫어내는 큰 아픔을 맛보는 그런 지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창으로 배를 찌르는 그런 아픔을 겪는 지옥입니다. 철거지옥은 쇠로 된 수레가 깔아뭉개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는 지옥을 말합니다.
다시 철상지옥, 철우지옥, 철의 지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철상지옥은 그냥 철이 아니라 시뻘겋게 달아오른 철로 된 상위에 앉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철우지옥은 시뻘겋게 쇠로 된 소가 와서 사람을 떠 받으려고 하는 그런 상황의 지옥입니다.
철의 지옥은 시뻘겋게 달은 쇠로 된 옷을 입고 천근만근 같은 무게에 짓눌리는 지옥을 말합니다.
계속해서 천인지옥, 철여지옥, 양동지옥, 포주지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천인지옥은 천 개의 칼날로 살을 저미는 듯한 아픔을 겪는 지옥을 말합니다.
철여지옥은 쇠로 된 나귀를 이끌고 가는 지옥을 말합니다.
양동지옥은 끓는 구리 속에서 아픔을 겪는 지옥을 말합니다.
포주지옥은 불에 달구어진 시뻘건 기둥을 안고 있는 지옥을 말합니다. 포주지옥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것을 놓으면 될 텐데 명예나 재산이나 욕심을 놓지 못해서 괴로움을 겪는 겨울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에서 유화지옥, 경설지옥, 좌수지옥, 소각지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화지옥은 화산이 터져서 흘러내리는 상황의 지옥을 말합니다.
또 경설지옥은 혀를 빼서 밭을 갈아야 하는 그런 지옥입니다.
좌수지옥은 머리를 토막 내고 자르는 지옥입니다.
소각지옥은 끊임없이 다리를 태우는 지옥입니다.
또 지장경에서는 담안지옥, 철환지옥, 쟁론지옥, 철수지옥, 다진지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담안지옥은 눈알을 씹어 먹는 그런 지옥입니다.
또 철환지옥은 쇠로 된 탄환을 던지게 하는 지옥을 말합니다.
쟁논지옥은 끊임없이 다투기만 하는 지옥을 말합니다.
철수지옥은 쇠로 무게를 다는 지옥을 말합니다.
다진지옥은 화를 많이 내는 지옥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다진지옥에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화를 내면 화를 내는 사람의 마음이 편하지 않을뿐더러 옆에 있는 사람까지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그래서 한번 화를 내고 나면 뱀의 몸을 갖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를 자꾸 내고 있으면 그 사람 옆에는 가고 싶지 않아 집니다. 화를 내면 자기와 별관계가 없는 사람도 다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철위산 안에 있는 수많은 지옥을 소개하였습니다.
온갖 종류의 지옥을 소개하다 -2
본문
地藏菩薩이 又言仁者여 鐵圍之內에 有如是等地獄하되 其數無限이라 更有叫喚地獄과 拔舌地獄과 糞尿地獄과 銅鎖地獄과 火象地獄과 火狗地獄과 火馬地獄과 火牛地獄과 火山地獄과 火石地獄과 火床地獄과 火梁地獄과 火鷹地獄과 鉅牙地獄과 剝皮地獄과 飮血地獄과 燒手地獄과 燒脚地獄과 倒刺地獄과 火屋地獄과 鐵屋地獄과 火狼地獄인 如是等地獄이거든 其中에 各各復有諸小地獄하되 或一或二며 或三或四로 乃至百千이 其中名號는 各各不同이니다
해석
지장보살이 또 말하기를 「인자여, 철위산 안에 이와 같은 많은 지옥이 있어 그 수가 한량없습니다.
또 규환지옥과 발설지옥과 분뇨지옥과 동쇄지옥과 화상지옥과 화구지옥과 화마지옥과 화우지옥과 화산지옥과 화석지옥과 화상지옥과 화량지옥과 화응지옥과 거아 지옥과 박피지옥과 음혈이 옥과 소수지옥과 소각지옥과 도자지옥과 화옥지옥과 철옥지옥과 화랑지옥 등이 이와 같은 많은 지옥이 있으며 그 가운데 각각 다시 여러 개의 적은 지옥이 있어 혹은 하나, 혹은 둘, 혹은 셋, 혹은 넷에서 백천에 이르며 그 가운데의 이름도 각각 같지 아니합니다.」하였다.
풀이
지장보살은 계속해서 지옥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지옥에는 규환지옥과 발설지옥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규환지옥은 고통이 심해서 온통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찬 지옥을 말하고 발설지옥은 혀를 빼내는 지옥입니다.
다음으로 분뇨지옥과 동쇠지옥이 있습니다.
분뇨지옥은 온통 오물로 뒤덮여 있는 지옥을 말하고
동쇄지옥은 구리로 철창을 해서 사람을 묶어 놓는 지옥입니다.
또 화상지옥과 화구지옥이 있습니다.
화상지옥은 불 코끼리가 가득한 지옥이고
화구지옥은 불개가 가득한 지옥을 말합니다.
불로 된 말의 지옥인 화마지옥과 불로 된 소의 지옥인 화우지옥과 불로 된 산의 지옥인 화산지옥과 불로 된 돌의 지옥인 화석지옥과 불로 만든 평상으로 된 지옥인 화상지옥과 불기둥 지옥인 화량지옥과 불매로 된 지옥인 화응지옥이 있습니다.
또 거아 지옥과 박피지옥이 있습니다.
거아 지옥은 톱니바퀴와 같은 어금니로 사람을 씹어 먹는 지옥을 말하고
박피지옥은 껍질을 벗기는 지옥입니다.
또 음혈이 옥, 소수지옥, 소각지옥이 있습니다.
음혈이 옥은 피를 빨아서 마시는 흡혈귀와 같은 그런 지옥을 말합니다.
소수지옥은 손을 태우는 지옥이며 소각지옥은 다리를 태우는 지옥입니다.
또 도자지옥과 화옥지옥이 있습니다.
도자지옥은 거꾸로 매달아 찌르는 지옥이며
화옥지옥은 불난 집에서 살도록 하는 지옥입니다.
또 철옥지옥과 화랑지옥이 있습니다.
철옥지옥은 철로 된 집에서 사는 지옥이고
화랑지옥은 불로 된 승냥이가 가득한 지옥을 말합니다.
지장보살은 이와 같은 수없이 많은 지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옥이 각각 다시 여러 개의 작은 지옥으로 나누어지고 그 작은 지옥이 백천 개나 되고 그 이름도 각각 다르다고 말합니다.
지장경에서 지옥의 세계는 결국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것입니다. 지옥의 이름이 수백수천에 이르는 것은 인간이 받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고통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받는 각양각색의 고통을 갖가지 지옥의 모습으로 잘 그려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지옥세계는 살아가면서 받는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을 때마다 전혀 다른 양상을 느끼는 것처럼 지옥의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지옥이란 결국 인간이 느낌으로서 존재하는 것[所感地獄]이기 때문입니다.
지장보살이 보현보살에게 말하다
업감이란 결국 개개인의 느낌에 대한 문제이다
본문
地藏菩薩이 又告普賢菩薩言하되 仁者여 此等은 皆是南閻浮提行惡衆生의 業感如是라 業力甚大하여 能敵須彌하며 能深巨海하며 能障聖道하나니 是故衆生은 莫經小惡하여 以爲無罪일지니 死後有報하여 纖毫受之하나니 父子至親이라도 岐路各別하며 縱然相逢하여도 無肯代受니다 我今에 承佛威力하시어 若說地獄罪報之事하리니 惟願仁者는 暫聽是言하소서 普賢菩薩이 答言하시되 吾雖久知三惡道報나 望仁者說은 令後世末法一切惡行衆生으로 聞仁者說하여 使令歸向佛法케하나이다
해석
지장보살이 또 보현보살에게 고해 말씀하시기를 「인자여, 이것은 모두 남염부제의 악을 행한 중생들의 업을 느낌이 이와 같습니다. 업력이 너무 커서 능히 수미산에 비길만하며, 능히 큰 바다보다 깊으며, 능히 도를 막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중생들은 적은 악이라고 하여 가볍게 여겨 죄가 없다고 하지만 죽은 뒤의 갚음은 털끝만 한 것도 다 받게 됩니다. 아버지와 자식은 지극히 친한 사이지만 가는 길이 각각 달라서 비록 서로 만난다고 하더라도 즐겨 대신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서 대략 지옥에서 있는 죄보에 대한 일을 말하겠으니 원하건대 인자께서는 이 말을 잠깐 들어 보십시오.」 하니 보현보살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비록 오래전부터 삼악도의 갚음을 알았으나 인자의 설하심을 바라는 것은 후세 말법시대에 일체 악행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인자의 설하심을 듣고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향하여 돌아가게 하고자 합니다.」
풀이
계속해서 지장보살이 보현보살에게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와 같은 지옥은 모두 사바세계의 악을 행한 중생들이 업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업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업감은 어느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죄업을 지어서 그 죄업에 대해서 혼자 느끼는 감정을 말합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똑같은 아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은 항상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개개인은 모두 자기 업대로 느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 있는 사람은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추운 줄 모르고 잘 지내지만 어떤 곳에 있는 사람들은 영상 5도만 되어도 추워서 죽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감이란 결국 개개인의 느낌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 느낌에 따라서 존재하는 고통의 형상들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지옥은 어느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개개인의 업의 많고 적음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지장보살은 계속해서 업력은 수미산만큼 크고 큰 바다보다 깊으면 성 서러운 길로 가는 일을 방해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도라는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 있어서 업력이 크면 큰 방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업력난산(業力難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업력은 바른 길을 나아가게 하는데 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압력의 크기를 수미산과 바다에 비유한 것을 보면 압력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업력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업력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지장보살의 강인한 원력에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합니다. 업을 잘 지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업을 순조롭게 짓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좋은 업을 짓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흔히 업을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선업도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악업이 있는 반면 선업이 있고, 정업이 있는 반면 부정업이 있습니다. 팔정도에서는 정업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선업을 짓고 정업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신구의(身口意)의 삼업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지장보살은 계속해서 업에 대해서 설명하다
지장보살은 계속해서 업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업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므로 중생들이 작은 악이라 하여 가볍게 여겨 죄가 없다고 하지만 죽은 뒤에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과보를 받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업을 짓고 업을 받는 입장에서는 한번 업을 지으면 백천 겁이 지난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가 지은 업은 인연을 만나면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업을 받는 것에도 순현보(順現報), 순생보(順生報), 순후보(順後報)의 세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금생에 업을 지어서 금생에 바로 받는 것을 순현보라 하고,
금생에 지어서 다음 생에 받는 것을 순생보라고 합니다.
또 금생에 지었는데 몇 생이 지난 후에 과보를 받는 것을 순후보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금생에 잘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금생에 잘한다고 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는 금생만 가지고 따지면 해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불교는 윤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숙세의 어떤 업을 생각하고 자기의 입장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연히 남을 원망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거나 병을 앓거나 온갖 불행을 안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그 반대로 아주 건강하고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풀기 위해서는 불교의 전생업 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형제, 똑같은 조건, 똑같은 가정에서 태어나도 사람마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같은 업 속에 있지만 또 다른 업을 갖고 살아갑니다. 같은 업을 갖고 같은 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을 공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같은 공업(共業)의 조건에서 살지만 개개인의 성품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므로 이것을 또 이업(異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공업 중에 이업이 있다고 말합니다. 업은 이렇게 서로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은 공업이지만 강원도다, 경기도다 하는 것은 이업에 속합니다. 또 같은 강원도에서 태어나도 다른 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있으므로 이것은 또 이업에 속합니다. 업에 대한 문제를 이렇게 세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업이든 악업이든 우리가 지은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갚아야 하는데 그것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강인한 원력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큰 돌이라도 배에 실으면 물에 빠지지 않지만 아무리 작은 돌이지만 그냥 물에 넣으면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큰 돌이지만 물에 빠지지 않는 도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정해진 업까지도 소멸한다고 해서 멸종업이라고 합니다.
중도정견이란
불교의 이치는 어느 한쪽만 이해하면 바른 소견이 될 수 없습니다. 중도정견(中道正見)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양면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그게 바른 견해가 됩니다. 말하자면 큰 돌은 작은 돌에 비해 무조건 잘 가라앉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쉽게 물에 가라앉을 수도 있고 아무리 큰 바위라도 물에 가라앉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치를 바로 이해해야 바른 견해입니다. 돌은 모두 물에 가라앉는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여기서 업이 있다고 해서 자기가 지은 업은 반드시 받는다고 알면 안 됩니다. 자기 업이 아무리 깊고 크지만 강인한 원력이 있으면 업을 피해 갈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일억이라 하더라도 수백억 재산가에게는 작은 돈에 불과하지만 수천 만원을 가진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을 이해할 때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장보살은 계속해서 업에 대해 설명합니다.
비록 아버지와 자식이 지극히 친한 사이지만 그 업은 대신 받을 수가 없고 각각 가는 길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부모자식 간은 매우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렇지만 업은 대신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식의 업을 부모가 대신 받을 수 있다면 참 편리하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자기 인생은 자기 몫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자식 때문에 너무 안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집착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일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식의 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인생, 자기의 일, 자기의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자기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그런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식에게 집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 된 도리로써 자식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지나치면 중도적인 바른 소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에서 계속해서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받는 죄보에 대해 보현보살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보현보살은 자신은 오래전부터 삼악도의 갚음을 알았으나 후세 말법 시대의 중생이 지장보살의 지옥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들로 하여금 불법에 귀의하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업으로 인해 받게 되는 지옥의 과보에 대해서 말하다
업행으로 느끼게 된다고 설명하다
본문
地藏菩薩이 白言하되 仁者여 地獄罪報其事如是하니 或有地獄은 取罪人舌하여 使牛耕之하며 或有地獄은 取罪人心하여 夜叉食之하며 或有地獄은 鑊湯盛沸하여 煮罪人身하며 或有地獄은 赤燒銅柱로 使罪人抱하며 或有地獄은 飛猛火聚하여 趁及罪人하며 或有地獄은 一向寒氷이며 或有地獄은 無限糞尿며 或有地獄은 飛鐵질鑗하며 或有地獄은 多攢火槍하며 或有地獄은 椎撞胸背하며 或有地獄은 俱燒手足하며 或有地獄은 盤繳鐵蛇하며 或有地獄은 驅逐鐵狗하며 或有地獄은 並駕鐵驢니다 仁者여 如是等報로 各各獄中에 有百千種業道之器하되 無非是銅是鐵이며 是石是火니 此四種物은 衆業行感입니다 若廣說地獄罪報等事인대 一一獄中에 更有百千種苦楚어든 何況多獄이리오 我今承佛威神과 及仁者問하여 略說如是어니와 若廣解說인댄 窮劫不盡이니다
해석
지장보살이 말씀하시기를 「인자여, 지옥의 죄보를 받는 일은 이와 같습니다. 혹 어떤 지옥은 죄인의 혀를 뽑아서 소를 시켜 갈게 하며, 혹 어떤 지옥은 죄인의 심장을 내어서 야차로 먹게 하며, 혹 어떤 지옥은 끓는 가마에 죄인의 몸을 삶으며, 혹 어떤 지옥은 벌겋게 단 구리쇠기둥을 죄인을 시켜 안게 하며, 혹 어떤 지옥은 맹렬한 불덩이를 날려서 죄인의 몸에 닿게 하며, 혹 어떤 지옥은 한결같이 찬 얼음으로 되어 있으며, 혹 어떤 지옥은 한량없는 똥과 오줌으로 덮여 있으며, 혹 어떤 지옥은 위에는 쇠뭉치가 날고 아래는 쇠말방쇠가 깔려 있으며, 혹 어떤 지옥은 많은 불창으로 찌르며, 혹 어떤 지옥은 방망이로 가슴과 등을 치며, 혹 어떤 지옥은 손과 발을 모두 태우며, 혹 어떤 지옥은 손에 쇠뱀이 서리고 감기며, 혹 어떤 지옥은 무쇠개가 몰고 쫓으며, 혹 어떤 지옥은 무쇠나 귀를 아울러서 타게 합니다. 인자여, 이와 같은 많은 보는 각 옥마다 백천 가지 업을 다스리는 기구가 있는데 구리나 무쇠와 돌과 불이 아님이 없습니다. 이 네 가지 물건은 여러 가지 업행으로 느끼게 합니다. 만약 지옥에서 받는 죄보의 일들을 널리 말씀드린다면 하나하나의 옥마다 다시 백천가지의 고초가 있는데 하물며 어찌 많은 지옥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내 지금 부처님의 위신력과 인자의 물으심을 입어 간략하게 이와 같이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만약 널리 해설한다면 겁을 지내도 다하지 못합니다.」
풀이
지장보살은 계속해서 업으로 인해 받게 되는 지옥의 과보에 대해서 말합니다. 어떤 지옥은 죄인의 혀를 뽑아서 소를 시켜 갈게 하며, 어떤 지옥은 죄인의 심장을 도려내어 야차로 하여금 먹게 하며, 어떤 지옥은 끓는 가마에 죄인의 몸을 삶으며, 어떤 지옥은 벌겋게 달군 구리 기둥을 안게 한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지옥은 강한 불덩이를 날라서 죄인의 몸에 닿게 하며, 어떤 지옥은 찬 얼음으로 되어 있으며, 어떤 지옥은 똥과 오줌으로 덮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 세상이 똥오줌으로 꽉 찬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하는 짓이 너무나 더러워서 오물로 오염된 사람으로 가득 찬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표현한 것이 바로 분뇨지옥입니다. 계속해서 어떤 지옥은 손가락 사이로 쇠뱀이 휘어 감기며, 어떤 지옥은 무쇠 개에 쫓기며, 어떤 지옥은 무쇠 나귀에 끌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지장보살은 지옥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지옥에는 업을 다스리는 기구가 있는데 그것은 모두 구리나 무쇠, 돌과 불로 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물건은 또 업행으로 느끼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업행이라는 말이 거듭해서 나오는 것은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개개인의 느낌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받는 죄보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 지금까지 설명한 지옥의 고초가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말하며 만약 더 자세히 해설한다면 겁을 지내도록 설명해도 다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옥에 대해서 설명한 것도 상당히 많은데 지옥의 종류는 더 있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지옥의 참상이라는 것은 그 숫자로 헤아릴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현실의 어떤 참혹한 모습들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불행하여 때때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옥이 이렇게 많은 것은 말로 다 표할 수 없는 지옥의 세계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이 경험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옥명호품에서는 지옥의 여러 가지 이름들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소개하고 그것이 모두 개인의 업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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