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 읽기
- 지장경-제1. 도리천에서 신통을 보이다. [忉利天宮神通品]
- 지장경-제2. 분신들을 모으다 [分身集會品]
- 지장경-제3. 중생들의 업을 인연을 관찰하다 [觀衆生業緣品]
- 지장경-제4. 염부제 중생들의 업으로 느낌 [閻浮濟衆生業感品]
- 지장경-제5. 지옥들의 이름 [地獄名號品]
- 지장경-제6. 여래가 찬탄하시다 [如來讚歎品]
- 지장경-제7.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이익함 [利益存亡品]
- 지장경-제8. 염라왕들이 찬탄하다 [閻羅王衆讚歎品]
- 지장경-제9.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라. [稱佛名號品]
- 지장경-제10. 보시한 공덕을 헤아리다 [校量布施功德緣品]
- 지장경-제11. 땅의 신들이 법을 보호하다 [地神護法品]
- 지장경-제12. 보고 듣는 이익 [繭門利益品]
- 지장경-제13. 사람들에게 부촉하다 [囑累人天品]
지장보살에 대한 보고 듣는 이익을 이야기하다
견문이익품에서는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에게 지장보살을 직접 보거나, 지장보살상을 그리거나 조성해서 남에게 보게 하거나, 지장보살에게 대해서 듣거나, 지장보살을 외워서 남에게 듣게 한다면 그 공덕이 한량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지장보살을 보거나 지장보살에 대해서 들으면 이익이 있다는 뜻으로 견문이익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견문이익품의 대강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정수리로부터 갖가지의 광명을 놓으면서 지장보살을 찬탄합니다. 이때 법회장에 있던 관세음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일에 관해서 말씀해 달라고 부처님께 여쭙니다.
부처님께서는 먼저 관세음보살을 염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이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관세음보살의 형상을 보거나, 관세음보살을 찬탄하거나,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을 행하는 이는 온갖 복락을 누리고 필경에 부처님으로부터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지장보살을 보고 지장보살에 대해서 들으면 얻게 되는 이익을 설하십니다. 지장보살의 형상을 보거나 명호를 듣고, 한 번이라도 공경심을 내어 절하거나 공양을 올리면 큰 쾌락을 얻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큰 병을 얻어 임종의 지경에 이른 사람을 위해서 지장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탱화를 그려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지장보살을 만나게 하면, 중병을 앓을 전생의 업보가 녹아지고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이가 그 조상이 악도에 떨어져 있지 않을까 염려될 때, 그 공덕으로 선망부모 친지권속이 악도를 여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망영가가 이미 천상에 태어났다면 더 좋은 복락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십일일 동안 일심으로 지장보살에게 예배하고 정근하면 꿈에 선망영가가 태어난 곳을 알려 주는 일도 있습니다. 또 매일 천 번씩 지장보살을 염하면 여러 토지신의 옹호를 받아서 의식이 풍족하고 마침내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게 됩니다. 머리가 나쁘고 정신이 흐려서 대승경전을 읽어도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지장보살에게 예배, 찬탄, 공 야하면서, 살생, 음식, 삿된 음행, 거짓말 등을 삼가고 칠일이나 이십일 일 동안 일심으로 계속하면 그 공덕으로 악업이 녹아지고 지장보살의 머리 쓰다듬을 받아서 총명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경전의 글귀가 한 번 귓가를 스치기만 해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안에 산란, 횡사, 꿈자리가 뒤숭숭함이 있을 때, 산과 바다를 넘어 먼 험로를 가면서 위급을 만났을 때, 지장보살의 명호를 만번 외우면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을 보고 듣는데 따르는 이익은 백천겁 동안 설해도 다하지 못한다는 말로 견문이익품의 끝을 맺고, 게송으로 다시 한번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견문이익품이라고 하는 것은 보고 듣는데 대한 이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보고 듣는다는 것은 부처님을 보고 듣는다는 것에서부터 지장보살상을 보고 듣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을 직접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만나더라도 지장보살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알기가 어렵습니다. 경전에서 보고 듣는다는 말은 지장보살상을 직접 만나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장보살의 훌륭한 이야기를 듣거나 지장보살을 염하며 지장보살의 원력을 닮으려는 지장보살의 기도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장보살께 공양 올리는 것을 포함해서 지장보살상을 친견하는 신앙행위에 대한 이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견문이란
그런데 여기서보고 듣는다는 견문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불을 하고 나서 행선 축원을 할 때 문아명 자면 삼도(聞我名者免三道),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내 이름만 들어도 누구든지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의 고통을 면하고 내 모습만 보아도 해탈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고통이 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의 인격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또 그것을 목표로 수행을 한다는 의미가 행선축원의 내용 속에 있습니다.
행선축원의 이 구절을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발원의 극치에 다다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발원이 너무 간절해서 소리만 듣고 삼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단지 모습만 보고도 해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마음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해결을 위해 발원하고 또 소박한 어떤 소망이 있으면 그런 소망을 발원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행선축원의 발원은 너무나 간절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발원을 대할 때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발원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의 공부에 큰 진전이 있는 것입니다.
견문이익품에는 우리가 잘 아는 관세음보살이 등장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지장보살에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에 대한 이익에 대해서 묻습니다. 끝 부분에 가서 관세음보살을 등장시키는 것은 지장보살에 대한 예배와 존경과 공양 등에 대한 이익을 확실히 굳혀 두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앞에서도 여러 번 공덕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서 특별히 관세음보살을 등장시켜 지장보살에 대한 이익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신념을 특별히 강하게 심어주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보통 관세음보살은 살아 있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고, 지장보살은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관음시식이나 구병시식의 예식문에는 관세음보살의 힘을 입어서 영가가 천도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지장경의 여러 곳에는 지장보살을 의지하는 공덕으로 직접 지장보살로부터 가피를 입거난 토지신과 화엄신중들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주로 자비를 베풀고자 하고, 지장보살은 주로 지옥중생을 건지고자 하지만, 불법에 있어서 이승과 저승은 한 줄기로 통해 있기 때문에 자비의 베품과 영가천도가 하나로 되는 경지가 있습니다. 그 경지에 이르면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견문이익품에서 견문이라는 뜻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장보살이라고 하더라도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고 지장보살에게 예배를 함으로써 이익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잘 이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자기가 가슴에 묻어 두고 있는 그런 사람이면 누가 그 사람의 이름을 한 번 부르거나 아니면 스스로 기억을 떠올리면 행동과 말이 달라지는 변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자기가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얼핏 보아도 가슴이 뜨거워 오고 두근거리는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육종진동(六種震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안이비설신의 육근이 그냥 있지 못하고 요동을 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간절한 신심으로 지극히 지장보살을 한번 염하기만 해도 마음속의 어떤 분노의 불길이나 슬픈 마음이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경전의 내용이 상당히 과장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거기에 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견문이 좁고 자신의 생각이 짧아서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 경전 자체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자로 잰 듯이 맞아떨어지는 세상살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장보살에 대해서 보고 듣고 공경하는 것은 결국 지장보살의 강한 원력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장보살은 원력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지장보살이라고 그 이름을 한 번 부르면 지장보살의 원력이 가슴에 가장 먼저 와닿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힘이 생기고, 용기도 생기고, 꿈과 희망이 생기고, 강한 생명력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결부되어야만 지장보살을 부르는 이익이 있는 것입니다.
그저 지장보살의 이름을 입으로만 부르면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한쪽만 아는 절름발이 신앙입니다. 지장보살은 우리가 겪고 있는 부정적인 면을 지옥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냈는데 그러한 극한 상황조차도 지장보살을 간절히 염하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픔은 슬픔으로 고통은 즐거움으로 전하위복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장보살이 단순하게 어떤 일을 바꾸어 주는게 아니라 지장보살을 염하는 일과 동시에 자신의 가슴속에서 지장보살과 같은 강인한 원력이 용솟음칠 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장보살과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정한 지장보살이 맞아떨어질 때 일을 호전시키고 바꾸어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행을 행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살아있는 경전의 가르침이 되고 지장경에서 말하고 있는 지장보살의 어떤 기도에 대한 이익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나 부를 때 지장보살의 뜨거운 원력이 자신의 내부로부터 솟아올라와야 됩니다. 그것이 지장보살을 뵙고 지장보살상을 보고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는 일이 됩니다.
여기서 진정 참다운 견문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잘못 이해하면 미신의 구렁텅이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도는 철저한 과학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어떤 가피력이 있다고 하는 것은 철저히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부처님 앞에 가서 맹목적으로 빌면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껍데기만 아는 것입니다. 불교는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광명을 발하다
본문
爾時世尊이 從頂門上하사 放百千萬億大毫相光하시니 所謂白毫相光과 大白毫相光과 瑞毫相光과 大瑞毫相光과 玉毫相光과 大玉毫相光과 紫毫相光과 大紫毫相光과 靑毫相光과 大靑毫相光과 碧毫相光과 大碧毫相光과 紅毫相光과 大紅毫相光과 綠毫相光과 大綠毫相光과 金毫相光과 大金毫相光과 慶雲毫相光과 大慶雲毫相光과 千輪毫光과 大千輪毫光과 寶輪毫光과 大寶輪毫光과 日輪毫光과 大日輪毫光과 月輪毫光과 大月輪毫光과 宮殿毫光과 大宮殿毫光과 海雲毫光과 大海雲毫光이니라
해석
그 때에 세존께서 정문 위로부터 백천만억의 대호상의 빛을 발하시니 그것은 백호상광과 대백호상광이며 서호상광과 대서호상광이며 옥호상광과 대옥호상광이며 자호상광과 대자호상광이며 청호상광과 대청호상광이며 벽호상광과 대벽호상광이며 홍호상광과 대홍호상광이며 녹호상광과 대록호상광이며 금호상광과 대금호상광이며 경운호상광과 대경운호상광이며 천윤호광과 대전륜호광이며 보륜호광과 대보륜호광이며 이륜호광과 데일륜호광이며 월륜호광과 대월륜호광이며 궁전호광과 대궁전호광이며 해운호광과 대해운호광이었다.
풀이
여기서는 부처님께서 광명을 발하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마로부터 백천만억의 대호상의 빛을 발한다고 했습니다. 대호상은 크고 환한 흰 빛을 발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대호상광의 여러 가지 이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맨 처음으로 백호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호상은 부처님의 삼십이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삼십이상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지만 특별히 백호상은 더욱 중요합니다. 백호상을 시작으로 하여 광명 이름이 여러 가지로 불린다고 하여 광명 이름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대백호상광, 성호상광, 대성호상광, 옥포상광, 대옥포상광 등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름 맨앞에는 백, 옥, 자색, 청, 력, 홍, 녹, 금색 등 색깔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경사스러운 구름이라는 뜻의 경운과 천 개의 바퀴가 달린 보배 바퀴 또 태양 같은 인륜, 월륜, 궁전, 바다의 구름 같은 것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부처님의 백호상에서 빛을 놓는데 그 빛은 오묘 불가사의해서 어떻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於頂門上에 放如是等毫相光已하시고 出微妙音하사 告諸大衆과 天龍八部人非人等하되 聽吾今日에 於忉利天宮에 稱揚讚歎地藏菩薩의 於人天中에 利益等事와 不思議事와 超聖因事와 證十地事와 畢竟不退阿耨多羅三藐三菩提事하라 說是語時에 會中有一菩薩摩訶薩하시니 名觀世音이라 從座而起하사 胡跪合掌하여 白佛言하되 世尊하 是地藏菩薩摩訶薩이 具大慈悲하사 憐愍罪苦衆生하여 於千萬億世界에 化千萬億身하사 所有功德과 及不思議威神力을 我已聞世尊이 如十方無量諸佛과 異口同音으로 讚歎地藏菩薩하시니 云何使過去現在未來諸佛로 說其功德하야도 猶不能盡이닛고
해석
정문 위에서 이와 같은 호상광을 놓으신 뒤에 미묘한 음성을 내어 모든 대중과 천룡팔부와 인비인 등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오늘 도리천궁에서 지장보살이 인간과 천상 가운데서 이익된 일과 사 의치 못한 일과 성인에 뛰어난 일과 십자를 증한 일과 마침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전하지 않은 일을 칭양하고 찬탄함을 들어보라.」
이 말씀을 설하실 때에 회중에 한 보살마하살이 계시니 이름은 관세음이라 자리에서부터 일어나서 호궤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 지장보살마하살이 대자대비를 갖추고 죄고의 중생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천만 억 세계에서 천만 억 의 몸으로 변화하는 공덕과 부사 의한 위신의 힘을 소유함은 제가 이미 세존과 시방세계의 무량제불께서 이구동성으로 지장보살을 찬탄하실 때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러 부처님께서 그 공덕을 말씀하셔도 오히려 다하지 못합니까.」
풀이
계속해서 부처님의 위대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문 위에서 호상광을 놓으신 뒤에 이번에는 미묘한 음성을 내어 모든 대중과 천룡팔부와 인비인등에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음성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로써 부처님의 성도에 대해서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입니다 불교는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이고 또 깨닫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불이란 말은 깨달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이요, 깨닫도록 하는 가르침입니다.
다시 말해 불교는 깨달으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달리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에 의한 가르침이며 깨달은 사람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궁극적으로 불교는 우리를 깨닫게 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얻어진 진리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은 뒤 49년간 설법을 하셨습니다.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부처님의 설법입니다.
부처님의 재산을 두 가지만 들라고 하면 깨달음과 설법을 들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깨달아서 중생들을 위해 다 토해내놓은 것이 말하자면 설법이고 팔만대장경입니다.
앞에서 광명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그것이 바로 깨달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깨달음을 뜻하고 그래서 깨달음이 있고 그다음에 부처님께서는 미묘한 음성을 내어 설법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장경에도 물론 그렇지만 모든 경전이 이런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깨달음과 설법이라는 입장입니다. 처음에 광명이라고 한 것은 바로 지혜의 광명을 얻었다는 말이고 그 다음에 미묘한 음성으로 대중에게 가르친다는 말은 바로 설법에 해당합니다. 대부분의 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 삼매에 들어 광명을 놓고 그런 다음에 설법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해서 부처님께서는 도리천궁에서 지장보살이 인간과 천상 가운데서 이익된 일과 불가사의한 일과 성스러운 씨앗이 되는 뛰어난 일과 십자를 정한 일과 마침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진하지 않은 일을 침량하고 찬탄함을 들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 번역하는데 부처님께서 얻은 깨달음을 말합니다. 또 습지라는 말은 중생이 부처가 되는 단계가 있는데 마지막 사십일 단계에서 오십 단계를 심지라고 말합니다. 그 앞의 십신, 십 주, 십행, 십 회향까지가 사십구 단계입니다.
그다음이 십자이고 십지 다음은 등각, 묘각입니다. 여기서 지장보살은 보살이기 때문에 각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그래서 심지까지는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지장보살은 십 지보살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여러 사람에게 이 말씀을 설하실 때에 회중에 관세음보살이 일어나 합장호궤하고 부처님께 말씀을 올리는 대목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나오는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성보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이 분들을 성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보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유명세계와 현실세계를 각각 담당한 보살로 대별됩니다. 여기서 관세음보살이 등장함으로 해서 지장보살의 위신력이 너무나 확실하다는 어떤 증명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부처님께 지장보살이 대자대비를 갖추고 중생을 불쌍히 생각하여 천만 억 세계에서 천만 억 의 몸으로 변화하는 공덕과 위신의 힘을 소유했다는 사실은 잘 들어서 알고 있는데 어째서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의 공덕을 말씀하셔도 오히려 다 하지 못하느냐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지장보살의 공덕을 지금까지 수없이 이야기해 왔는데 그런데도 아직 지장보살의 이야기는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표현을 써서 지장보살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이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힘에 대해 말하다
본문
向者에 又蒙世尊이 普告大衆하시되 欲稱揚地藏利益等事하오니 唯願世尊하 爲現在未來一切衆生하사 稱揚地藏不思議事하와 令天龍八部로 瞻禮獲福瞻禮獲福케하소서佛告觀世音菩薩하되 汝於娑婆世界에 有大因緣하여 若天若龍과 若男若女와 若神若鬼와 乃至六道罪苦衆生이 聞汝名者와 見汝形者와 戀慕汝者와 讚歎汝者는 是諸衆生이 悉於無上道에 必不退轉하여 常生人天하여 具受妙樂하여 因果將熟하면 遇佛授記하리라 汝今에 具大慈悲하여 隣愍衆生과 及天龍八部하여 欲聽吾의 宣說地藏菩薩不思議利益之事하니 汝當諦聽하라 吾今說之하리라 觀世音言하되 唯然世尊하 願樂欲聞하나이다
佛告觀世音菩薩하시되 未來現在諸世界中에 有天人이 受天福盡하여 有五衰相이 現하여 或有墮於惡道之者라도 如是天人의 若男若女當現相時하여 或見地藏菩薩形像커나 或聞地藏菩薩名하고 一瞻一禮하면 是諸天人이 轉增天福하여 受大快樂하고 永不歷三惡道報하리라 何況見聞菩薩하고 以諸香火衣服飮食과 寶貝瓔珞으로 布施供養하면 所獲功德福利는 無量無邊하리라
해석
「전번에 또한 세존께서 널리 대중에게 일러서 지장의 이익 등에 관한 일을 칭양 하고자 하심을 입었사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현재와 미래의 일체중생을 위하여 지장보살의 부사 의한 일을 칭양하시어 천룡팔부로 하여금 첨례하여 복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저 사바세계에 큰 인연이 있어 천과 용과 남자와 여자와 신과 귀 내지는 육도의 죄고 중생이 너의 이름을 듣는 자나 너의 형상을 보는 자나 너를 생각하고 사모하는 자나 너를 찬탄하는 자 등 이 모든 중생은 모두 무상도에서 반드시 퇴전하지 아니하고 항상 인간과 천상에 나서 묘한 즐거움을 갖추어 받게 되며 인과가 성숙하면 부처님의 수기를 만날 것이다.
네 지금 대자대비심을 갖추고 중생과 천룡팔부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내가 지장보살의 부사의한 이익되는 일을 선선함을 듣고자 하니 너는 자세히 들어라. 내 지금 말하겠노라.」
관세음보살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에게 이르시기를 「미래와 현재의 모든 세계 중에 천인이 천복을 받아서 마치고 오쇠상이 나타나면 혹은 악도에 떨어지는 자가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천인이 남자나 여자가 그러한 상이 나타날 때를 당하여 혹 지장보살의 형상을 보거나 혹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번 보고 예배하게 되면 이 모든 천인이 전하여 하늘의 복을 더하고 큰 쾌락을 받아 영원히 삼악도의 보를 지내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어찌 지장보살을 보고 들어서 모든 향과 꽃과 의복과 음식과 보배와 영락을 가지고 보시하고 공양함이겠느냐 그리하여 얻은 공덕과 복과 이익은 한량없고 끝이 없을 것이다.」
풀이
여기서는 관세음보살과 부처님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부처님께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힘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장보살에게 예배하고 공양하고 어떤 공덕을 짓는 일을 통해서 이익을 얻도록 해 달라고 말합니다. 지장보살의 공덕에 관한 이익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여기서는 관세음보살의 입을 통해서 했다는 점에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에게 사바세계와 큰 인연이 있다고 칭찬을 하고 나서 관세음보살에 대한 공덕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형상을 보는 자나 생각하고 사모하는 자나 찬탄하는 자 등은 무상도에서 반드시 퇴전하지 아니하고 항상 인간과 천상에 나서 묘한 즐거움을 갖추어 받게 되며 인과가 성숙하면 부처님의 수기를 만날 것이라고 칭찬합니다. 그렇게 칭찬하고 나서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원력의 힘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에게 여덟 가지의 지장보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지장보살의 여덟가지 이야기
첫째, 미래와 현재의 모든 세계 중에 천인이 천복을 받아서 오쇠상이 나타나면 악도에 떨어지는 자가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오쇠상은 다섯 가지 쇠퇴하는 모습이 천상 사람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몸이 자꾸 무거워진다든지 옷에 때가 자꾸 묻는다든지 하는 마치 우리가 늙어갈 때 변화의 조짐이 있듯이 그런 현상을 다섯 가지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결국 천상이란 높은 곳이기 때문에 복을 다하면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궁극 목표인 열반을 증득하거나 해탈을 증득하면 다시 땅으로 떨어질 염려도 없고 퇴전할 염려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하늘을 향해서 활을 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하늘을 향해서 활을 힘껏 당겨서 쏘면 그 올라가는 세력이 힘이 있는 동안은 한참 올라가지만 그 힘이 다하면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장경에서 말하는 천상 사람은 현실적으로 잘 사는 사람, 권세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천상에서 떨어진다는 말은 결국 높은 자리에서 추락하는 형상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땅으로 떨어질 때는 대부분 땅 속에 꽂히듯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고 예배하면 천인이 전하여 하늘의 복을 더하고 큰 쾌락을 받아 영원히 삼악도의 죄를 지내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지장보살을 보고 모든 꽃과 향과 의복과 음식과 보배와 영락을 가지고 보시하고 공양하는 공덕은 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얻은 복과 공덕과 이익은 한량없고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천상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천상은 아주 높이 올라간 사람, 또는 잘 사는 사람을 뜻하는데 그런 사람도 잘못하게 되면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장보살의 두 번째 이야기
본문
復次觀世音아 若未來現在諸世界中에 六道衆生이 臨命終時에 得聞地藏菩薩名하되 一聲歷耳根者는 是諸衆生이 永不歷三惡道苦하리니 何況臨命終時에 父母眷屬이 將是命終人의 舍宅財物과 寶貝衣服으로 塑畵地藏形像커나 或使病人未終之時에 或眼見耳聞하여 知道眷屬이 將舍宅寶貝等하여 爲其自身하여 塑畵地藏菩薩形像하면 是人이 若是業報로 合受重病者라도 承斯功德하여 尋卽除愈하고 壽命增益하며 是人이 若是業報命盡하여 應有一切罪障業障으로 合墮惡趣者라도 承斯功德하여 命終之後에 卽生人天하여 受勝妙樂하고 一切罪障은 悉皆消滅하리라
해석
「다시 또 관세음아, 만약 미래와 현재의 모든 세계 중에 육도의 중생이 명을 마칠 때가 되어 지장보살의 이름을 얻어 들어서 한 소리만 귓가를 스치더라도 이 모든 중생은 영원히 삼악도의 고통에 떨어지지 아니하거든 어찌 하물며 명을 마칠 때가 되어 부모와 권속이 이 명을 마치는 사람의 집이나 재물과 보배와 의복을 가지고 지장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그림 그리며 혹 병든 사람이 죽기 전에 혹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여 도를 아는 권속으로 하여금 집이나 보배 등을 가지고 그 자신을 위하여 지장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그림으로 그리게 하면 만약 이 업보가 중병을 받는데 합당하더라도 이 공덕을 이어서 곧 병을 제하고 낫게 되어 수명이 증익된다. 이 사람이 만약 이 업보로 명이 진하여 일체의 좌장과 업장으로 악취에 떨어짐에 합당하더라도 이 공덕을 이어서 명을 마친 뒤에 곧 인간과 천상네 나서 뛰어난 묘한 즐거움을 받고 일체의 죄상이 모두 다 소멸될 것이다.」
풀이
지장보살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에게 만약 미래와 현재의 육도중생이 명을 마칠 때가 되어 지장보살의 이름을 얻어 들어서 한 소리만 귓가를 스치더라도 이 모든 중생은 영원히 삼악도의 고통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모와 권속이 명을 마치는 사람의 집이나 재물과 보배와 의복을 가지고 지장보살의 형성을 조성하거나 그림을 그리면 병든 사람이 죽기 전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여 도를 아는 권속으로 하여금 집이나 보배 등을 가지고 그 자신을 위하여 지장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그림을 그리게 하면 업보가 중병을 앓는데 합당하더라도 이 공덕을 이어서 곧 병을 없애고 낫게 되어 수명이 증익된다고 합니다.
병든 사람이 죽기 전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한다는 말은 죽는 사람의 이름으로 지장보살을 조성하거나 아니면 지장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사실을 죽는 사람에게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도를 아는 권속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이치에 아주 밝은 친척을 말합니다. 또 업보가 중병을 앓는데 합당하다는 말은 업보 때문에 중병을 앓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수명이 증익된다는 것은 수명이 자꾸 늘어난다는 말입니다.
결국 여기서도 업보를 이기는 것은 지장보살의 원력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장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지장보살의 강한 원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지장보살을 한 번 부른다고 해서 죽을 사람이 살아나고 병든 사람이 금방 다 낳는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지장보살의 진정한 의미를 잘 새길 때 이 모든 사실들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장보살의 의미를 제대로 못 새기면 과장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거듭 이야기했지만 지장보살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그렇게 이해하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장경은 절대 과장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과학적인 이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세 번째 이야기
본문
復次觀世音菩薩아 若未來世에 有男子女人이 或乳哺時나 或三歲五歲와 十歲已下에 亡失父母커나 乃及亡失兄弟姉妹하고 是人年旣長大하여 思憶父母와 及諸眷屬하여 不知落在何趣하며 生何世界하며 生何天中하여 是人이 若能塑畵地藏菩薩形像커나 乃至聞名하고 一瞻一禮커나 一日至七日히 莫退初心하고 聞名見形하며 瞻禮供養하면 是人眷屬이 假因業故로 墮惡趣者計當劫數라도 承斯男女兄弟姉妹塑畵地藏形像하여 瞻禮功德으로 尋卽解脫하고 生人天中하여 受勝妙樂하며 是人의 眷屬이 如有福力하여 已生人天하여 受勝妙樂者는 卽承斯功德하여 轉增聖因하고 受無量樂하리라 是人이 更能三七日中에 一心瞻禮地藏菩薩形像하여 念其名字하되 滿於萬遍하면 當得菩薩이 現無邊身하여 具告是人眷屬生界하리라 或於夢中에 菩薩이 現大神力하여 親領是人하여 於諸世界에 見諸眷屬하리며 更能每日에 念菩薩名千遍하여 至于千日하면 是人은 當得菩薩遣이니 所在土地鬼神하여 終身衛護하며 現時衣食豊溢하고 無諸疾苦하며 乃至橫事를 不入其門케하거든 何況及身이리요 是人이 畢竟에 得菩薩의 摩頂授記하리라
해석
「다시 또 관세음보살아, 만약 미래세에 남자나 여인이 혹 젖을 빨 때나 혹 세 살이나 다섯 살이나 열 살 이하에 부모를 잃고 형제와 자매를 잃고 이 사람의 나이 장대하여 부모와 모든 권속을 생각하나 어느 추리에 떨어졌으며, 어떤 세계에 났으며, 어떤 천 가운데 났는지 알지 못하면 이 사람이 지장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그림으로 그리며 또한 이름만을 듣고 한번 뵈옵고 한번 예배하여 하루에서 이레까지 처음 마음에서 물러서지 아니하고 이름을 듣거나 형상을 보고 첨예하고 공양하면 이 사람의 권속들이 인업을 빌렸기 때문에 악취에 떨어져서 겁수를 헤아리는 데 해당하더라도 이 남녀의 형제와 자매는 지장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첨례한 공덕을 이어 곧 해탈함을 얻어 인간과 천상가운데 나서 뛰어난 묘한 즐거움을 받게 된다. 이 사람의 권속이 만약 복력이 있어서 이미 이간과 천상에 나서 뛰어난 묘한 즐거움을 받고 있는 자는 곧 이 공덕을 이어 성스러운 원인이 점점 증가하여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사람이 다시 삼칠일 중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장보살의 형상을 첨례하고 그 명자를 염하여 만 번을 채우게 되면 보살이 무변신을 나타내어 갖추어서 이 사람의 권속이 난 세계를 알려줌을 얻을 것이다. 혹은 꿈속에 보살이 큰 신력을 나타내어 친히 이 사람을 거느리고 모든 세계를 돌면서 모든 권속을 보여 줄 것이다.
다시 매일 지장보살의 이름 천 번을 염하여 천일에 이르게 되면 이 사람은 보살이 그가 있는 곳에 토지의 귀신을 보내서 죽을 때까지 호위하도록 할 것이며, 현시의 의식이 풍족하여 넘치고 모든 질고가 없어지며 횡액이 될 일까지도 그 문에 들어가지 못하거든 하물며 어찌 몸에 미치게 하겠느냐. 이 사람은 필경에 보살이 이마를 만져주는 수기를 얻을 것이다.」
풀이
관세음보살이 뵙고 지장보살의 견문이익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부처님께서 만약 미래세의 남자나 여인이 있어 나이가 아주 어렸을 때 형제자매를 잃고 나이가 들어 부모와 권속을 생각하나 어느 세계에 떨어졌으며 또 어느 세계에 났는지 알지 못할 때 이 사람이 지장보살의 형상을 그리거나 조성하여 이름만 듣고 한번 보고 예배하여 하루에서 칠일까지 처음 마음에서 물러서지 아니하고 이름을 듣거나 형상을 보고 우러러 예배하고 공양하면 이 사람의 권속들이 악취에 떨어졌더라도 그 공덕으로 인간과 천상 가운데 나서 뛰어난 즐거움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루에서 이레까지 처음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흔히 우리는 처음에는 마음을 잘 내다가도 그다음에는 시들해져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도를 배우는 데 있어서는 처음 마음과 같이 해서 결코 변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은 도 배우는데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에서도 특별히 필요합니다. 처음 서로 연애하고 좋아하는 그 마음이 그대로 죽을 때까지 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처음 마음을 변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정말 중요하며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 닦는데 초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처음 마음을 끝까지 가진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처음 신심 낸 그 마음이 그대로 있으면 해결되지 못할 일도 없고 아예 어떤 문제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어렸을 때 부모 형제를 잃은 고아가 그 부모나 권속을 보고 싶어서 또 어디에 있는지 그리워서 지장보살을 조성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예배드리면 그들의 과보가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사람의 권속이 만약 공덕이 있어서 이미 인간과 천상에 나서 뛰어난 묘한 즐거움을 받고 있는 자는 이 공덕을 이어 성스러운 원인이 점점 증가하여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사람이 다시 삼칠일 중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장보살의 형상을 첨예하고 그 명자를 염하여 만 번을 채우게 되면 보살이 무변신을 나타내어 갖추어서 이 사람의 권속이 난 세계를 알려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장보살을 만 번만 외우면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권속들이 지금 어디 태어났는지를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또 꿈속에 보살이 큰 위신력을 나타내어 친히 이 사람을 거느리고 모든 세계를 돌면서 모든 권속을 보여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꿈에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이곳저곳을 다 데리고 다니면서 부모를 찾아 준다는 것입니다.
또 지장보살의 이름을 매일 천 번을 염하여 천일에 이르면 이 사람은 지장보살이 있는 곳에 토지의 신을 보내서 죽을 때까지 호위한다고 합니다. 또 현시의 의식이 풍족하여 넘치고 모든 질고가 없어지며 횡액이 될 일까지도 그 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 이마를 만져주는 수기를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마를 만져주는 수기를 마정수기라고 하는데 그것은 지장보살이 언제 성불할 것이며, 언제 해탈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일입니다. 마정수기를 갖는 것은 불교의 최종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정수기란 부처가 될 때 이름과 세계 등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네 번째 이야기
본문
復次觀世音菩薩아 若未來世에 有善男子善女人이 欲發廣大慈心하여 救度一切衆生者와 欲修無上菩提者와 欲出離三界者는 是諸人等이 見地藏形像하며 及聞名者至心歸依커나 或以香華衣服과 寶貝飮食으로 供養瞻禮하면 是善男女等의 所願速成하여 永無障碍하리라
해석
「다시 또 관세음보살아,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넓고 큰 자비심을 발하여 일체의 중생을 구원하여 제도하고자 하는 자와 무상보리를 닦고자 하는 자와 삼계를 뛰어나고자 하는 자 등이 모든 사람들의 지장보살의 형상을 보거나 이름을 듣고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며 혹은 향과 꽃과 의복과 보배와 음식을 가지고 공양하며 첨예하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 등은 소원을 속히 성취하여 영원히 장애가 없을 것이다.」
풀이
다시 지장보살의 네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만약 미래세중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넓고 큰 자비심을 발하여 일제의 중생을 구워하여 제도하고자 하는 자와 무상보리를 닦고자 하는 자와 삼계를 뛰어나고자 하는 자 등 모든 사람들이 지장보살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고 공양을 하면 소원을 속히 성취하여 장애를 없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상보리를 닦는다는 말은 불교의 최고 목표인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무상보리를 닦고자 하거나 삼계를 뛰어나고자 하는 자는 지장보살에게 우러러 예배하고 온갖 공양을 올리면 자신의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다섯 번째 이야기
본문
復次觀世音아 若未來世에 有善男子善女人이 欲求現在未來百千萬億等願과 百千萬億等事어든 但當歸依瞻禮供養讚歎地藏菩薩形像하면 如是所願所求를 悉皆成就하며 復願地藏菩薩이 具大慈悲하사 永擁護我하면 是人於眠夢中에 卽得菩薩의 摩頂授記하리라
해석
「다시 또 관세음보살아,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현재와 미래의 백천만억 등의 원과 백천만억 등의 일을 구하고자 하거든 다만 지장보살의 형상을 대하여 귀의하고 첨예하며 공양하고 찬탄하면 이와 같이 원하는 것과 구하는 것이 모두 다 성취될 것이며, 다시 지장보살이 대자비를 갖추고 영원히 자기를 옹호해줄 것을 원하면 이 사람의 잠이나 꿈속에서 곧 보살이 이마를 만져주며 수기를 받을 것이다.」
풀이
다음으로 지장보살의 견문에 대한 이익의 다섯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만약 미래세의 선남자와 선여인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한다면 지장보살의 형상을 대하여 귀의하고 첨례하며 공양하고 찬탄하면 원하는 것과 구하는 것이 모두 성취된다고 합니다.
또 지장보살이 대자비를 갖추고 영원히 자기를 옹호해 줄 것을 원하면 이 사람의 잠이나 꿈 속에서 보살이 이마를 만져주면서 수기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마정수기로서 약속을 하는 장면입니다. 다시 말해 지장보살이 마정수기를 해서 앞으로 성불한다는 보장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장보살의 여섯 번째 이야기 *
본문
復次觀世音菩薩아 若未來世에 善男子善女人이 於大乘經典에 深生珍重하여 發不思議心하여 欲讀欲誦하며 縱遇明師하여 敎示令熟하여도 旋讀旋忘하여 動經年月하되 不能讀誦하나니 是善男女等이 有夙業障하여 未得消除故로 於大乘經典에 無讀誦性하니 如是之人이 聞地藏菩薩名하며 見地藏菩薩像하고 具以本心으로 恭敬陳白하며 更以香花衣服飮食과 一切玩具로 供養菩薩하고 以淨水一盞으로 經一日一夜하여 安菩薩前然後에 合掌請服하되 廻首向南하고 臨入口時에 至心鄭重하여 服水卽畢하고 愼五辛酒食과 邪淫妄語와 及諸殺生을 一七日或三七日하면 是善男子善女人이 於睡夢中에 具見地藏菩薩이 現無變身하여 於是人處에 授灌頂水하리니 其人이 夢覺하면 卽獲聰明하여 應是經典을 一歷耳根하면 卽當永記하여 更不忘失一句一偈하리라
해석
「다시 또 관세음보살아, 만약 미래세의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경전에서 깊이 진중하는 마음이 생겨서 사의 할 수 없는 마음을 발하여 읽거나 외우고자 하며 비록 밝은 스승을 만나 가르침과 지시를 받아 익숙해지도록 하여도 금방 읽고 금방 잊어서 해와 달을 지나도 독송하지 못하는 선남자선여인들은 숙세의 업장을 소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승경전을 읽고 외우는 성품이 없음이니 이와 같은 사람이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지장보살의 형상을 보고 본심을 갖추어서 공경하게 아뢰고 다시 향과 꽃과 의복과 음식과 일체의 완구를 가지고 보살께 공양하고 깨끗한 물 한 그릇으로 하루 낮 하룻밤을 지나도록 보살의 앞에 둔 뒤에 합장하여 먹기를 청하되 머리를 돌려 남쪽을 향하고 입에 들어갈 때가 되어 지극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물을 마시고는 오신의 나물과 주식과 사음과 망어와 모든 살생을 한 칠일이나 혹 삼칠일을 삼가게 되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의 잠자는 꿈 가운데 지장보살이 무변신을 갖추어 나타내어 이 사람이 사는 곳에서 이마에 물을 따라 주는 것을 볼 것이며, 그 사람이 꿈을 깨고 나면 곧 총명함을 얻어서 이 경전이 한 번만 귓가에 스쳐도 곧 영구히 기억하여 다시는 한 구절이나 한 게송도 잊거나 잃어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풀이
이번에는 지장보살의 여섯 번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이 여섯 번째는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만약 미래세의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경전에서 깊이 진중하는 마음이 생겨서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발하여 읽거나 외우고자 하며 비록 밝은 스승을 만나 가르침과 지시를 받아 익숙해지도록 하여도 금방 읽고 금방 잊어서 해와 달이 지나도 독송하지 못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숙세의 업장을 소재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승경전을 읽고 외우는 성품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대승경전이라는 것은 우리가 의지해야 할 중요한 의지처입니다. 대승경전에서 깊이 진중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은 아주 소중한 생각이 들고 또 마음에 크게 감사하는 뜻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또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발한다는 것은 대승경전이 정말 좋은 경전이며 좋은 말씀인 줄 알아서 아주 감탄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보고 좋아하지만 부처님의 이치에 합당한 말씀을 보고 신심을 내는 것은 정말 값진 일입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말씀이 정말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마음이 바로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발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보거나 듣고 감동이 깊으면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신심이 정말 장한 신심입니다. 또 읽거나 외우고자 하며 밝은 스승을 만나 가르침과 지시를 받아 익숙해진다고 하는 말은 아무리 좋은 경전의 말씀이라도 들을 때는 알 것 같은데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기서 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금방 잊어버리더라도 우리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꾸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부처님의 씨앗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불성이 자란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경전을 잘 독송하지 못하고 잘 잊어버리는 것은 머리가 둔해서라기보다도 숙세의 업장을 녹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재미있어하고 흥미를 느끼는 일에는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업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기억을 잘할 수 있는 반면에 경전은 일찍이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업과는 다른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익히려고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또 잘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기억이라는 것은 작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의 위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숙세의 인연에서 무엇을 익혀 왔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재미있어하는 한 편의 영화는 집중해서 잘 보고 기억을 잘합니다. 그런데 경전의 말씀은 전생으로부터 훈습이 잘 되어 있지 않아 기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불성인간(佛性人間)입니다. 불성인간이기 때문에 지장보살의 원력을 일으켜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불성인간의 기본적인 요소를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불성인간이란 기본원리를 부정하면 팔만대장경 전부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부처님의 이야기가 이치에 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지장경의 내용이 전부 가능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불성인간이라고 하는 일심의 원리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누구나 인간은 부처의 소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력의 삶을 통해서 업장을 극복하다
우리가 개개인에게 있어서 개성이 다르고 지은 업이 다른 것이지 머리가 둔하다거나 기억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업이 익혀져 있는 사람은 자기 분야에서는 모두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는 천재에 속합니다.
여기서 천재보다 더 좋은 것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똑같이 부처님의 머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재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전부 부처님의 머리를 가져서 천재보다 훨씬 뛰어난 마음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숙세의 업장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원력이 크면 숙세의 업장은 녹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업장을 깨알 같이 글씨가 적힌 신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신문에 작은 글씨가 박혀 있는 것은 업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 작은 글씨를 그대로 두고 신문에 있는 글씨보다 더 큰 글씨로 진하게 적으면 자신이 적은 놓은 글씨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업장이 신문의 글씨라면 지장보살의 원력은 그 신문의 작은 글씨를 능가하는 큰 붓글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극복해 버리면 업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업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한 원력이 있으면 경전의 구절을 못 외울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 자체에만 매달리는 소승불교보다 원력불교, 보살불교, 대승불교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원력의 삶을 통해서 업장을 극복해야 합니다. 업장을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지장경의 일관된 사상입니다.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이와 같은 사람이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지장보살의 형상을 보고 본심을 갖추어서 공경하게 아뢰고 다시 향과 꽃과 의복과 음식과 일체의 완구를 가지고 보살에게 공양하고 깨끗한 물 한 그릇으로 하루 낮, 하룻밤을 지나도록 보살의 앞에 둔 뒤에 합장하여 먹기를 청하되 머리를 돌려 남쪽으로 향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물을 마시고는 오신의 나물과 주식과 사음과 망어와 모든 살생을 삼가게 되면 잠자는 꿈 가운데 지장보살이 무변신을 갖추어 나타나서 이 사람이 사는 곳에서 이마에 물을 따라주는 것을 본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으로 다기물 마시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다기물은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한 물이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는 풍습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을 물속에 투영시키면 그 물이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마에 물을 따라주는 것은 바로 마정수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본문에서 그 사람이 꿈을 깨고 나면 곧 총명함을 얻어 경전이 한 번만 귓가에 스쳐도 영구히 기억하여 다시는 잊어버리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불망염지(不忘念智)를 얻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잊어버리지 않는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불망염지는 특별한 지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란 존 자는 불망염지의 경지에 다다른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지장보살의 일곱 번째 이야기
본문
復次觀世音菩薩아 若未來世에 有諸人等이 衣食不足하고 求者乖願하며 或多疾病하며 或多凶衰하여 家宅不安하고 眷屬分散하며 或諸橫事多來忤身하고 睡夢之間에 多有驚怖어든 如是人等이 聞地藏名커나 見地藏形하고 至心恭敬하여 念滿萬遍하면 是諸不如意事가 漸漸消滅하여 卽得安樂하고 衣食豐溢하며 乃至睡夢中에도 悉皆安樂하리라
해석
「다시 또 관세음보살아, 만약 미래세의 모든 사람들이 의식이 부족하여 구해도 원에 어긋나며 혹은 질병이 많고 혹은 흉하고 쇠해지는 것이 많아서 집안이 불안하고 권속이 나누어지고 흩어지며 혹 횡액의 일이 많이 생겨서 몸에 거슬리며, 잠자는 꿈자리에 놀래고 두려운 일이 많거든 이와 같은 사람들이 지장의 이름을 듣거나 지장의 형상을 보고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며 염하여 만 번을 채우면 이 모든 뜻과 같지 아니한 일이 점점 소멸하고 곧 안락함을 얻고 의식이 풍족하게 넘치며 잠자는 꿈 속에 까지 모두 안락하게 될 것이다.」
풀이
지장보살의 견문이익에 대한 일곱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만약 미래세에 사람들의 의식이 부족해서 구하려고 해도 부족하며 질병이 많고 흉하고 쇠해지는 것이 많아서 집안이 불안하고 권속이 나누어지고 흩어지며 모든 횡액의 일이 생겨서 몸에 거슬리며 잠자는 사이에 두려운 일이 많거든 이와 같은 사람들이 지장경을 만 번만 외우면 모든 나쁜 것이 소멸되고 안락함을 얻고 의식이 풍족하게 넘치며 잠자는 꿈 속에까지 안락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전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서로 연관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멀게 혹은 가깝게 직접 혹은 간접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과 연관이 있습니다. 어떤 일은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의 연기의 도리는 그와 같습니다. 큰 기계가 나사 한 개를 빼버리면 안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나의 존재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서 모든 존재가 있고 모든 존재는 또 자신과 연관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여덟 번째 이야기
본문
復次觀世音菩薩아 若未來世에 有善男子善女人이 或因治生하며 或因公私하며 或因生死하며 或因急事하여 入山林中커나 過渡河海와 乃及大水커나 或經險道할새 是人이 先當念地藏菩薩名萬遍하면 所過土地鬼神衛護하여 行住坐臥에 永保安樂하며 乃至逢於虎狼獅子와 一切毒害하여도 不能損之하리라 佛告觀世音菩薩하시되 是地藏菩薩이 於閻浮提에 有大因緣하니 若說於諸衆生에 見聞利益等事인데 百千劫中에 說不能盡하리라 是故로 觀世音아 汝以神力으로 流布是經하여 令娑婆世界衆生으로 百千萬劫에 永受安樂케하라
해석
「다시 또 관세음보살아,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혹생활에 인하거나, 혹 공사에 인하거나, 혹 생사에 인하거나, 혹 급한 일을 인하여 산림 중에 들어가든지, 내와 바다를 건너든지, 큰 물을 만나든지, 혹은 험한 길을 가든지 하여 이 사람이 먼저 지장보살의 이름 만 번을 염하면 지나는 곳의 토지의 귀신이 호위하여 행하거나 주하거나 좌하거나 와하거나 영원히 안락을 보장하며 호랑이나 사자나 일체의 해독을 만나더라도 손해를 받지 아니한다.」
부처님께 관세음보살에게 이르시기를 「이 지장보살은 염부제에 큰 인연이 있어 만약 모든 중생에게 보고 듣고 이익되게 하는 일을 설하려면 백천겁 중을 설하더라도 다할 수가 없다. 이러므로 관세음아, 너는 신력을 가지고 이 경을 유포시켜 사바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백천만겁 동안 영원히 안락함을 받도록 하라.」
풀이
마지막으로 지장보살의 공덕과 관련된 여덟 번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혹 생활이나 공사, 생사나 급한 일로 인해서 산림 중에 들어가든지 매와 바다를 건너든지 큰 물을 가든지 하는 경우를 당해서 지장보살을 만 번만 외우면 토지의 귀신이 호위하여 행하거나 주하거나 앉거나 눕거나 영원히 안락을 보장하며 호랑이나 사자나 일체의 해독을 만나더라도 손해를 받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려면 먼저 지장기도부터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은 염부제에 큰 인연이 있어 만약 모든 중생에게 보고 듣고 이익되게 하는 일을 설하려면 백천 겁을 설하여도 다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가지고 이 경을 유포시켜 중생들로 하여금 영원히 안락함을 찾도록 하라고 당부합니다.
지금까지 지장보살의 견문의 이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 소개된 여덟 가지의 이야기를 우리가 넓게 이해한다면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지장기도부터 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송에 대해 말하다
본문
爾時世尊이 而說偈言하되
吾觀地藏威神力하니 恒河沙劫說難盡이로라
見聞瞻禮一念間하면 利益人天無量事하리라
若男若女若龍神이 報盡應當墮惡道라도
至心歸依大士身하면 壽命轉增除罪障하리라
少失父母恩愛者하고 未知魂神在何趣하며
兄弟姉妹及諸親을 生長以來皆不識하여
或塑或畵大士身하고 悲戀瞻禮不暫捨하여
三七日中念其名하면 菩薩當現無邊體하여
示其眷屬所生界하고 縱墮惡趣尋出離하며
若能不退是初心하면 卽獲摩頂授聖記하리라
해석
이때에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시기를 「내가 지장의 위신력을 관해보니 항하사겁을 설하여도 다할 수 없다. 보고 듣고 첨례하는 한 순간에 이익은 인간과 천상에 한량이 없다. 남자와 여자와 용신들도 보가 다하여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지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대사신에 귀의하면 수명은 증가되고 죄상이 제거되리라. 어려서 부모의 은애를 잃어버린 자, 혼신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며 형제자매와 모든 친척들도 커오면서 모두 알지 못하더라도 대사의 몸을 조성하거나 그림 그려서 비련 한 마음으로 첨예하여 버리지 않고, 삼칠일 동안 그 이름을 염하게 되면 보살께서 무변신을 나타내어 그 권속의 난 곳을 보여주리라. 비록 악취에 떨어져도 곧 벗어나며, 만약 이 초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이마 만짐을 얻고 성기를 받으리라.」
풀이
앞에서 관세음보살에게 지장보살의 견문의 이익을 설명하는 여덟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다음에 그것을 거듭 추려서 게송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말하자면 앞부분은 산문 부분이 되고 여기서부터는 게송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 부분은 산문 부분을 다시 시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경전의 구성을 보면 대개 산문 부분과 게송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산문 부분에서 이야기한 것을 다시 게송으로 거듭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중송(重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산문이 없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시 형식의 경도 있습니다. 이것을 고기송(孤起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기송은 홀로 일어난 어떤 시형식의 경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경전이 산문화되지 않고 입으로 외워서 구전으로 독송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입으로 외우기는 시형식으로 되어야 외우기에 좋은 것입니다. 산문으로 되면 외우기가 힘들기 때문에 초기경전의 대부분은 게송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법구경 같은 것은 게송으로 된 대표적인 경전입니다. 게송으로 된 불교경전은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의 중요한 부분을 사구게라고 하는 것입니다. 금강경 사구게는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라고 합니다. 방금 예를 든 것은 금강경의 제일 사구게이며 금강경에는 이밖에도 제이 사구게, 제삼 사구게, 제사 사구게까지 있습니다.
사구게
그러면 게송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이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시기를 내가 지장의 위신력을 관해 보니 항하사겁을 설하여도 다할 수가 없다. 보고 듣고 첨례하는 한 순간에 이익은 인간과 천상에 한량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네 개의 게송입니다. 이것을 사구게라고 합니다. 사구게란 네 구절로 된 게송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장기도를 할 때 지장찬에 들어 있는 구절입니다. 지장찬에는 첫 구절이 지장대성위신력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오 간지장위신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성이란 말이 들어가고 오 간이란 말이 빠진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지장찬에는 사구게 다음에 고아일심귀명래(孤我一心歸命來)라는 게송이 이어집니다. 이 말은 일심으로 그 목숨 바쳐서 귀의한다는 뜻으로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지장보살에게 예의를 올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장보살의 위대한 위신력에 예경하고 게송을 외우면 우리에게 큰 이익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의 사구게는 남자와 여자와 용신들도 보가 다하여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지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대사신에 귀의하면 수명은 증가되고 죄상이 제거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악도에 떨어질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지장보살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면 우리에게 큰 이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의 사구게는 어려서 부모의 자상함과 사랑하심을 잃어버린 자, 혼신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며 형제자매와 모든 친척들도 커오면서 모두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산문과 비교해 보면 뜻이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앞부분의 친척들도 커오면서 알지 못하더라도 와 이어서 보살님의 몸을 조성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비련 한 마음으로 첨예하여 버리지 않고 삼칠일 동안 그 이름을 염하게 되면 보살께서 무변신을 나타냄에 그 권속을 난 곳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기도를 하면 삼칠일 동안 하게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칠일 간 일체의 망상 없이 깨달은 아주 특별한 정진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칠일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것을 삼칠일, 사칠일, 오칠일, 또는 칠칠일까지 지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천애의 고아가 되어서 자기의 부모나 형제자매가 돌아가셨는데 어디에 태어났는지, 어디에 사는지 모를 때 지장보살에게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면 그들이 난 곳을 보여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계속해서 게송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비록 악취에 떨어져도 곧 벗어나며 만약 이 초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이마 만짐을 얻고 성기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성스러운 수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다시 말해 언제쯤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은중심을 발하다
본문
欲修無上菩提者와 乃至出離三界苦인댄
是人旣發大悲心하여 先當瞻禮大士像하면
一切諸願速成就하여 永無業障能遮止하리라
有人發心念經典하여 欲度群迷超彼岸할새
雖立是願不思議하여도 旋讀旋忘多廢失은
斯人有業障惑故로 於大乘經不能記하나니
以香花衣服飮食과 諸玩具供養地藏하고
以淨水安大士前하여 一日一夜求服之하되
發殷重心愼五辛과 酒肉邪淫及妄語하며
三七日內勿殺生하고 至心思念大士名하면
卽於夢中見無邊하고 覺來便得利眼耳하여
應是經敎歷耳聞하면 千萬生中永不忘하리라
해석
「무상의 보리를 닦고자 하는 자와 삼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가 이미 대비심을 발하여 먼저 대사의 형상에 첨례한다면 일체의 모든 소원을 속히 성취하여 영원히 업장을 없이하고 또 막으리라.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경전을 염하고 미한 무리를 제도하여 피안에 이르고자 하면 비록 이 원을 세웠으나 부사 의한 것, 금방 읽고 금방 잊는 많은 폐실은 이 사람이 업장에 미혹된 때문에 대승경전을 읽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향과 꽃과 의복과 음식 등 모든 완구로 지장을 공양하며, 정화수를 대사 앞에 놓아두고 하루 낮 하룻밤을 지난 뒤 마시며, 은중심을 발하여 오심과 주육과 사음과 망어를 삼가며, 삼칠일 동안 살생하지 말고, 지극한 마음으로 대사이름을 염하면 곧 꿈속에 무변신이 보이나니 깨고 나면 문득 이목의 총명 얻네. 이 경과 교가 귀에 들리기만 해도 천만생 중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풀이
계속해서 게송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상의 보리를 받고자 하는 자와 삼계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가 이미 대비심을 발하여 먼저 대사의 형상에 첨례한다면 일체 모든 소원을 속히 성취하여 영원히 업장을 없이 하고 또 막아 준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지은 업장을 모두 없애고 또 앞으로 지을 업장까지도 다 막아준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게송 부분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경전을 염하고 미혹한 무리를 제도하여 피안에 이르고자 하면 비록 이 원을 세웠으나 불사 의한 것도 금방 읽고 금방 잊는 많은 폐실은 이 사람이 업장에 미혹되었기 때문에 대승경전을 읽고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어떤 사람이 지장경을 자꾸 외우고 사람들을 제도하려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업장 때문에 잘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또 지장보살께 지극히 귀의하는 마음을 내라고 합니다.
그 마음은 다음 게송으로 이어집니다. 향과 꽃과 의복과 음식 등 모든 완구로 지장을 공경하며 깨끗한 물 한 그릇 보살님께 올려서 두고 하루 낮, 하룻밤을 지낸 뒤 마시며 은중심을 발하여 오심과 주육과 사음과 망어를 삼가며 삼칠일 동안 살생하지 말며 지극한 마음으로 보살님의 이름을 염하면 곧 꿈속에 무변신이 보이나니 깨고 나면 문득 이목의 총명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 경과 교가 귀에 들리기만 해도 천만중생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은중심을 발한다는 말은 아주 존중하고 무거운 마음을 발한다는 뜻입니다.
지장보살에게 기도하면 얻게 되는 이익
본문
以是大士不思議로 能使斯人獲此慧하나니라
貧窮衆生及疾病과 家宅凶衰離眷屬하며
睡夢之中悉不安하고 求者乖違無稱遂라도
至心瞻禮地藏像하면 一切惡事皆消滅하고
至於夢中盡得安하며 衣食豐饒鬼神護리라
해석
「이것이 대사의 부사의 라. 이 사람으로 하여 이 지혜 얻게 하네. 빈궁한 중생이 질병과 가택에 흉쇠있고 권속이 떠나가서 꿈속까지도 모두 불안하며, 구하는 것이 뜻을 어기어 되는 일 없을 때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상을 첨예하면 일체의 악한 일이 모두 소멸되고, 꿈속까지도 모두 편안함을 얻어 의식이 풍요하고 귀신이 옹호한다.」
풀이
계속해서 게송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살님의 불가사의한 것이라 이 사람으로 하여 이 지혜 얻게 한다고 했습니다. 또 빈궁한 중생이 질병과 집안이 몰락하고 권속이 떠나가서 꿈속까지도 모두 불안하며 구하는 것이 뜻을 어기어 되는 일 없을 때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상을 첨례하면 일체의 악한 일이 모두 소멸되며 꿈속까지도 편안함을 얻어 의식이 풍요하고 귀신이 옹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지장보살상을 뵙고 우러러 존경하고 또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고 지장보살에게 기도하면 얻어지는 어떤 이익, 혹은 공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덕을 법계에 회향하면 필경에 성불하여 생사를 초월할 것이다
본문
欲入山林及渡海하여도 毒惡禽獸及惡人과
惡神惡鬼並惡風과 一切諸難諸苦惱라도
但當瞻禮及供養을 地藏菩薩大士像하면
如是山林大海中도 應是諸惡皆消滅하리라
觀音至心聽吾說하라 地藏無量不思議를
百千萬劫說不周하리니 廣宣大士如是力하라
地藏名字人若聞커나 乃至見像瞻禮者는
香華衣服飮食奉하고 供養百千受妙樂하리니
若能以此回法界하면 畢竟成佛超生死하리니
是故觀音汝當知하여 普告恒沙諸國土하라
해석
「산림에 들어가거나 바다를 건널 때나 독악한 금수와 악인과 악신과 악귀와 악한 바람 등 일체의 모든 어려움, 모든 고뇌에 다만 첨예하고 공양하되 지장보살 대사상에 하면 이 같은 산림이나 대해 중에서도 모든 악이 모두 소멸된다. 관음은 지극한 마음으로 내말 들으라. 지장은 한량없는 부사의니라. 백천만겁을 설해도 다하지 못하리니 널리 대사의 이와 같은 힘을 선설하라. 지장의 이름자를 사람이 듣거나 형상을 보고 첨례하는 자나 향과 꽃과 의복과 음식을 바치거나 공양하면 백천 가지의 묘락을 받는다. 만약 이것을 법계에 회향하면 필경에 성불하여 생사를 초월한다. 이러므로 관음아 너는 알아서 널리 항하사의 모든 국토에 고하라.」
풀이
게송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림에 들어가거나 바다를 건널 때나 악독한 금수와 악인과 악신과 악귀와 악한 바람 등 일체의 모든 어려움, 모든 고뇌가 있어도 다만 첨례하고 공양하되 지장보살 대사상에 하면 이같은 산림이나 대해 중에서도 악이 모두 소멸된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지장보살의 강인한 원력과 의지력, 용솟음치는 힘 그리고 꿈과 희망 등을 가슴 가득히 가지고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내고 헤쳐나간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바닷속에 들어가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헤맨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이런 구체적인 현상으로 혹은 어떤 자연현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게송은 이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말을 들어라고 지장은 한량없는 불가사의라고 말합니다. 또 백천만겁을 다해도 설하지 못하느니 널리 보살님의 이와 같은 힘을 선설하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지장보살에 대한 공덕을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천분의 일 내지 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게송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지장의 이름자를 사람이 듣거나 형상을 보고 첨례하는 자나 향과 꽃과 의복과 음식을 바치거나 공양하면 백천 가지의 묘락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그 모습을 보고 예배를 한 번 하기만 해도 큰 은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게송에서는 만약 이것을 법계에 회향하면 필경에 성불하여 생사를 초월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에게 알아서 널리 항하사 모든 국토에 널리 펼치도록 당부합니다. 법계에 회향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지장보살에게 예배하고 꽃과 향과 의복과 음식 이런 것을 공양올리고 이런 공덕을 통해서 내가 얻는 어떤 공덕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계에 회향하는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회향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회향이란 내가 지은 선행을 내가 그대로 다 받는 것이 아니라 선근 공덕은 내가 지었지만 거기에 돌아오는 이익은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향의 뜻입니다. 우리가 선근을 지으면 일단 자기 자신만 공덕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회향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해 모두 상대방에게 공덕을 돌리는 회향심을 갖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회향심이 커지면 자신은 계속 선행만 하고 거기서 돌아오는 공덕과 이익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흔히 부모 자식 간에는 그런 마음이 가능합니다. 부모가 지은 어떤 공덕이 자식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장보살과 우리가 다른 점은 지장보살은 자기 자식이 아닌 사람에게도 그런 마음을 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그런 사람에게도 마음을 쓸 줄 아는 분이 바로 지장보살입니다. 그래서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의 마음은 모든 중생을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게송에는 모든 중생을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그런 마음으로 중생을 돌본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회향이라고 하는 말은 이처럼 소중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지장경 마지막 부분에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이 나오지만 관세음보살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지장보살의 공덕을 다시 한 번 더 확신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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