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 읽기
- 지장경-제1. 도리천에서 신통을 보이다. [忉利天宮神通品]
- 지장경-제2. 분신들을 모으다 [分身集會品]
- 지장경-제3. 중생들의 업을 인연을 관찰하다 [觀衆生業緣品]
- 지장경-제4. 염부제 중생들의 업으로 느낌 [閻浮濟衆生業感品]
- 지장경-제5. 지옥들의 이름 [地獄名號品]
- 지장경-제6. 여래가 찬탄하시다 [如來讚歎品]
- 지장경-제7.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이익함 [利益存亡品]
- 지장경-제8. 염라왕들이 찬탄하다 [閻羅王衆讚歎品]
- 지장경-제9.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라. [稱佛名號品]
- 지장경-제10. 보시한 공덕을 헤아리다 [校量布施功德緣品]
- 지장경-제11. 땅의 신들이 법을 보호하다 [地神護法品]
- 지장경-제12. 보고 듣는 이익 [繭門利益品]
- 지장경-제13. 사람들에게 부촉하다 [囑累人天品]
중생들이 보시하는 공덕이 얼마나 큰가
교량보시공덕연품은 중생들이 보시하는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헤아려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량보시공덕연품의 대강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장보살이 부처님께 중생에 따라서 단기간이나, 일생이나, 수백생 동안 복락을 누리는 이도 있고, 그와 반대로 고초를 겪는 이도 있는데, 복락을 누리고 고초를 받는 데는 그 주된 이유가 무엇인지 보시의 공덕과 연관 지어서 말씀해 달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를 보고 겸손한 자비심으로 직접 보시하거나, 남을 시켜 보시하거나, 어려운 이를 위로하기만 해도 수백 수천생 동안 칠보의 보물이 떠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절이나, 불탑이나, 불상이나, 경전을 만났을 때, 공경심을 내어 공양을 올리며, 파괴된 불상 등을 만났을 때 그를 복구하는데 직접, 간접으로 힘쓰거나, 남이 그러한 일을 하도록 인연을 맺어 준다면, 백천생 동안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늙고 병든 이나 해산하는 여인을 위해 필요한 물질로 돕거나 찰나 동안만이라도 돕고자 하는 마음을 낸다면, 오랜 겁 동안 천상의 주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대승경전의 한 게송이나 구절을 만나서 찬탄하고 공경하며 경전을 위해 보시하고 공양하거나, 경전을 보수 관리하거나, 아무리 사소한 한 털끝, 한 모래알, 한 물방울만큼의 공덕이라도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회향한다면 백천생 동안의 최상의 낙을 누릴 것이고 만약 가까운 자기 권속이나 자신의 이익에 회향한다면 삼생 동안만 낙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량보시공덕연 품은 보시공덕의 인연을 헤아려 살펴본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시를 하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다
불교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의 기본인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에 의하면 현재의 고통은 정신적 육체적인 미혹의 탐욕에 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탐욕이 있게 되는 이유는 ‘나’라는 관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나’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할 때 나를 지우는 데서부터 출발해서 내 것을 생각지 않고, 마침내 탐욕심을 없앨 수가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탐욕의 반대인 보시를 행함으로써 내 것과 나를 지우는 데까지 가야 비로소 성불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장경의 이 품에서는 보시로부터 시작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보시의 수행을 닦아서 나를 지우는 경지에 이른다면, 길고 짧은 시간이나 복락의 있고 없음을 구별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무량겁 동안의 천상 복락을 새삼스럽게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인간의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알기 쉽게 풀면 삼독이 되는데, 다시 삼독(三毒)은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입니다. 그중에서도 탐심이 근본을 이룹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탐욕은 채워질수록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부풀어진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벽을 만날 때 진심, 즉 화내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인간의 과욕은 어리석음으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또는 자기 욕심에 꽉 차 있는 사람은 판단력이 흐려져서 어리석은 마음을 내게 됩니다.
따라서 탐심을 지우면 삼독심이 지워지고, 삼독심이 없어지면 근본 무명을 밝히는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이 지혜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보시로 삼독심을 지우는 것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성취하는 데 있기 때문에 지장경에서의 부처님은 다 헤아리기 어려운 보시의 공덕을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탐욕의 반대이기도 하고 성불의 길로 가는 모든 수행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보시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한다는 주체적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평등한 자기 권리를 누리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제도나 법은 우리에게 평등을 주지 못합니다. 과거에 공산주의가 평등을 강조했지만 평등을 이루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는 잘 사는 세상을 이상으로 삼지만 다 같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만 잘 살게 할 뿐입니다. 자본주의로 인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법만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오직 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주체적으로 부다 적게 가진 사람에게 보시함으로써만 평등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윤회를 확실하게 믿는 옛날의 인도 사회에서 부처님이 보시의 공덕을 강조하고 보시한 이에게 좋은 과보가 있다고 말한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이 말을 뒤집으면, 보시하지 않고 탐심만 충족시키려고 하면 수백 수천생 동안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 앞에서 가진 것을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지 않으면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었던 것입니다.
보시가 자발적으로 행해져서 서로 서로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사회가 이루어지면 그곳이 바로 천상의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보시하는 사람은 천상의 주인이라고 불러도 좋고, 주인도 없고 종도 없는 세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또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가 각기 온 세계를 통치하는 전륜성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보시의 대상을 가난한 이, 늙은 이, 병든 이, 해산하는 여인 등을 들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가 보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해산하는 여인은 가난하지 않더라도 그 당시의 처지에서는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돈을 많이 가진 사람만 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보시할 수가 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마음으로만 보시해도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이를 위로하기만 해도 좋고, 내가 할 수 없으면 남이 보시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 주기만 해도 무량한 공덕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법구경에는 한 신도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므로 절에 갈 때 나뭇잎 썩은 것을 한 그릇 담아 가서 절 채소밭에 거름으로 줌으로써 보시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시를 행하되 그 공덕을 자신이 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터럭만큼의 보시를 했더라도 그 공덕을 일체중생에게 돌리면 그 공덕이 무량수의 배로 불어나며, 자기 자신이나 자기의 친지 권속에게만 보시 공덕을 돌린다면 그 공덕이 크게 불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보시를 할 때 첫째는 가지고 못 가짐에 관계없이 보시하는 마음이 중요하고 둘째는 그 공덕을 회향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지장보살이 부처님께 보시하는 공덕에 대해 질문하다
본문
爾時에 地藏菩薩摩訶薩이 承佛威神하사 從座而起하여 胡跪合掌하고 白佛言하되 世尊하 我觀業道衆生하여 校量布施컨대 有輕有重하여 有一生受福하며 有十生受福하며 有百生千生에 受大福利者하니 是事云何니까 唯願世尊아 爲我說之하소서 爾時에 佛告地藏菩薩하되 吾今於忉利天宮一切衆會에 說閻浮提布施校量功德輕重하니 汝當諦聽하라 吾爲汝說하리라 地藏白佛하되 我疑是事하니 願樂欲聞하나이다 佛告地藏菩薩하되 南閻浮提에 有諸國王과 宰輔大臣과 大長者와 大刹利와 大婆羅門等이 若遇最下貧窮이어나 乃至𤷬殘暗啞聾癡無目인 如是種種不完具者하여 是大國王等이 欲布施時에 若能具大慈悲하여 下心含笑하여 親手遍布어나 或使人施하여 軟言慰喩하면 是國王等의 所獲福利는 如布施百恒河沙佛功德之利하니라 何以故요 緣是國王等이 於是最貧賤輩와 及不完具者에 發大慈悲心일새 是故로 福利有如此報하여 百千生中에 常得七寶具足하리니 何況衣食受用이리요
해석
그때에 지장보살 마하살이 부처님의 위신의 힘을 이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호궤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관하오니 업도의 중생이 보시하는 공덕을 비교하여 헤아려 보건대 가벼움도 있고 무거움도 있어서 일생 동안 복을 받기도 하고 섭생 동안 복을 받기도 하며 백생이나 천생 동안 큰 복과 이익을 받는 자도 있는데 이러한 일은 어찌 그러한 것입니까.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설하여 주십시오.」
그때에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이르시기를 「내 지금 도리천궁의 일체 중 회에서 염부제 중생이 보시하는 공덕의 경중을 교량하여 설할 것이니 너는 자세히 듣도록 하라. 내 너를 위하여 설하겠노라.」
지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이 일을 의심하였더니 즐거이 듣고자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이르시기를 「남염부제에 있는 모든 국왕과 재상과 대신과 큰 장자와 큰 찰리와 큰 바라문 등이 만약 가장 빈궁한 자를 만나거나 꼽추나 벙어리와 귀먹은 이와 백치와 장님 등과 같은 가지가지의 완전치 못한 불구자를 만나서 이 대국의 왕들이 보시를 하고자 할 때에 만약 능히 큰 자비심을 갖추고 자기의 마음을 낮추고 웃음을 지으면서 친히 자기 손으로 두루 보시하거나 혹 사람을 시켜 보시하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게 되면 이 국왕들이 얻는 복리는 백항하사와 같이 많은 부처님에게 보시하는 공덕보다 이익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국왕들은 저 가장 빈천한 무리와 불구자에 대하여 큰 자비심을 발했으므로 복과 이익이 이와 같은 갚음이 있어 백천생중에 항상 칠보가 구족함을 얻게 되거든 하물며 의복과 음식의 수용뿐이겠느냐.」
풀이
여기서는 지장보살이 부처님께 보시하는 공덕에 대해 질문하는 대목입니다. 지장보살은 업도의 중생이 보시하는 공덕을 비교해 보니 가벼움도 있고, 무거움도 있고, 일생 동안 복을 받기도 하고, 섭생 동안 복을 받기도 하며, 백생천생 동안 큰 복과 이익을 받는 자도 있다고 비교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호강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선 년에 고생하다가 말년에 좋은 사람도 있듯이 여기에 나오는 공덕이야기는 바로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사람마다 복을 받는 기간이 모두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에게 보시하는 공덕의 경중을 비교하여 설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장경의 내용 속에는 우리들의 신행생활을 하는데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사십구재 문제라든지 염불, 기도하는 문제 등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잘 살펴 우리의 일상생활에 응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의 질문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첫째, 남염부제에 있는 모든 국왕과 제상, 대신, 큰 장자와 큰 관리와 바라문 등이 가장 빈궁한 자를 만나거나 꼽추나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 등과 같은 불구자를 만나서 이 대국의 왕들이 보시하는 공덕을 지으면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대목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요즘은 가끔 어려운 곳에 가서 남을 물질로 돕거나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지에 가서 직접 봉사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불자들이 공수래공수거처럼 입만 가지고 설법을 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방편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방편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그런 근기의 수준에 맞추어서 보시를 해야 베푸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타 종교에서는 이런 방면에 일찍부터 눈을 떴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학, 교육, 복지 분야에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타 종교인 들은 복을 많이 지어 놓은 셈입니다. 그래서 정부의 요직에 타 종교인이 더 많은 숫자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리로 볼 때 불교 교리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월등히 좋다고 하더라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사회봉사 문제라든지 복지 문제라든지 실제적으로 우리가 생활하는데 어떤 소득이 되는 일에 그동안 등한히 해온 게 사실입니다. 타 종교인들이 빈궁한 사람, 꼽추,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을 때 우리는 부처님에게만 눈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현실적으로 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또 보시하고자 할 때는 큰 자비심을 갖추고 자기의 마음을 낮추고 웃음을 지으면서 친히 자기의 손으로 두루 보시하라고 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 불자들은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보시공덕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본문
復次地藏아 若未來世에 有諸國王至婆羅門等이 遇佛塔寺어나 或佛形像이어나 乃至菩薩聲聞辟支等像하여 躬自營辦하여 供養布施하면 是國王等이 當得三劫에 爲帝釋身하여 受勝妙樂하리니 若能以此布施福利로 廻向法界하면 是大國王等이 於十劫中에 常爲大梵天王하리라 復次地藏아 若未來世에 有諸國王至婆羅門等이 遇先佛塔廟어나 或至經像이 毁壞破落하여 乃能發心修補하되 是國王等이 或自營辦커나 或勸他人하되 乃至百千人等하여 布施結緣하면 是國王等이 百千生中에 常爲轉輪王身이요 如是他人의 同布施者는 百千生中에 常爲小國王身하며 更能於塔廟前에 發廻向心하면 如是國王과 乃及諸人이 盡成佛道하리니 以此果報는 無量無邊이니라
해석
「다시 또 지장아, 만약 미래세에 모든 국왕에서 바라문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탑이나 절이나 혹 부처님의 형상 내지는 보살 성문벽지불 등의 형상을 만나서 몸소 경영하고 마련하여 공양을 올리고 보시하게 되면 이 국왕들은 삼겁 동안 제석의 몸을 얻어 뛰어난 묘한 즐거움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이 보시한 복리를 법계에 회향하게 되면 이 대국왕들은 십겁 중에 항상 대범천왕이 될 것이다.
또다시 지장아, 만약 미래세에 모든 국왕에서 바라문 등에 이르기까지 옛 부처님의 탑이나 묘나 혹은 경전이나 형상에 이르기까지 헐리우고 무너지고 깨이고 떨어진 것을 보고 능히 발심하여 보수하게 되면 이 국왕들은 혹 스스로 경영하고 마련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권해서 백천 사람들이 보시하여 인연을 믿도록 했을지라도 이 국왕들은 백천생 중에 항상 전륜왕의 몸이 될 것이요.
이와 같이 보시한 다른 사람들도 백천생 중에 항상 소국왕의 몸이 될 것이며, 다시 능히 탑과 사당 앞에서 회향심을 발하게 되면 이와 같은 국왕과 모든 사람들은 모든 불도를 성취할 것이며 이러한 과보는 한량이 없고 끝이 없을 것이다.」
풀이
보시공덕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본문에서 만약 미래세에 모든 국왕에서 바라문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탑이나 절 혹은 부처님의 형상, 보살, 성문, 벽지불 등의 형상을 만나서 스스로 공양을 올리고 보시하게 되면 이 국왕들은 제석의 몸을 얻어 뛰어난 묘한 즐거움을 받게 되고 보시한 공리를 법계에 회향하게 되면 이 국왕들은 대범천왕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계속해서 세 번째 보시 공덕은 부처님의 탑묘나 경전이나 형상에 이르기까지 허물어지고 무너지고 깨어지고 떨어진 것을 보고 발심하여 보수하면 전륜왕의 몸이 된다고 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불사를 할 때 설판시주나 화주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자기 자신도 불사에 동참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여 공덕을 짓자고 하는데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권하는 일을 권선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도 자기가 하거나 남을 시켜서 하거나 모든 공덕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도 마찬가지지만 나쁜 일도 자기가 하거나 남을 시켜서 하게 되면 그 과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남을 시켜서 하게 되는 좋은 일은 자기에게 복이 많이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권함을 받고 동참한 사람에게도 복이 돌아가지만 그것을 하도록 권한 사람에게 더욱 큰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짓을 했으면 그 일의 배후인물을 추적해서 그 죄의 진상을 묻게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에서는 이와 같이 보시한 다른 사람들도 소국왕의 몸이 되고 능히 탑과 사당 앞에서 회향심을 발하게 되면 국왕과 모든 사람들은 불도를 성취하며 끝없는 공덕의 과보를 받는다고 합니다.
보시를 통해 불도를 이루다
본문
復次地藏아 未來世中에 有諸國王과 及婆羅門等이 見諸老病과 及生産婦女하고 若一念間이나 具大慈心하여 布施醫藥과 飮食臥具하여 使令安樂하면 如是福利는 最不思議라 一百劫中에 常爲淨居天主하며 二百劫中에 常爲六欲天主하고 畢竟成佛하여 永不墮惡道하며 乃至百千生中에 耳不聞苦聲하리라 復次地藏아 若未來世中에 有諸國王과 及婆羅門等이 能作如是布施하면 獲福無量하고 更能回向하면 不問多少하고 畢竟成佛하리니 何況釋梵轉輪之報이리요 是故地藏이 普勸衆生하여 當如是學當如是學케하라復次地藏아當如是學케하라復次地藏아 未來世中에 若善男子善女人이 於佛法中에 種小善根을 毛髮沙塵許라도 所受福利는 不可爲喩니라
해석
「다시 또 지장아, 미래세 중에 모든 국왕과 바라문들이 모두 늙고 병든 사람과 생산하는 부녀자를 보고 만약 한 순간이라도 대자심을 발하여 의약과 음식과 화구를 보시하여 그들을 안락하게 한다면 이와 같은 복과 이익은 가장 불가사의하여 일백 겁 중을 항상 정거천의 주인이 되며, 이 백 겁 중을 항상 육욕천의 주인이 되고 마침내는 불도를 성취하여 영원토록 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백천생 중의 귀에 고통스러운 소리도 들리지 아니할 것이다.
다시 또 지장아, 만약 미래세 중에 모든 국왕과 바라문들이 능히 이와 같은 보시를 짓게 되면 얻는 복이 한량이 없을 것이며 다시 능히 이 복을 회향하면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필경에 불도를 성취할 것인데 하물며 어찌 제석천과 법천왕과 전륜왕이 되는 갚음뿐이겠느냐. 이러므로 지장아, 널리 중생을 구너 하여 이와 같은 일을 배우게 하라.
다시 또 지장아, 미래세 중에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불법 중에서 적은 선근을 머리털이나 모래나 티끌만치만 심더라도 받는 복과 이익은 비유하여 말할 수가 없다.」
풀이
다음으로 네 번째 보시공덕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본문에서 미래세 중에 모든 국왕과 바라문이 늙고 병든 사람과 아이를 낳는 부녀자를 보고 한 순간이라도 대자비심을 발하여 의학과 음식과 침상을 보시하여 그들을 안락하게 하면 하늘의 주인이 되며 항상 육욕천의 주인이 되며 마침내 불도를 성취하여 영원히 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인천인과교는 불교가 아니라는 말을 했는데 여기에 정거천의 주인이 되며 육욕천의 주인이 되는 것은 모두 천상에 난다는 말입니다. 정거천이나 육욕천은 전부 복을 지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불교는 열반을 증득하고 생사를 해탈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마침내는 불도를 이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장경은 생사해탈과 열반증득에 대한 내용보다는 우리의 눈앞에 닥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당면한 과제에 대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주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불도를 성취하여 영원토록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다섯 번째 보시공덕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본문에서 미래세 중에 모든 국왕과 바라문이 이와 같은 보시를 하게 되면 얻는 복이 한량없고 또 복을 회향하면 마침내 불도를 성취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널리 중생에게 보시하기를 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탑을 중수한다거나 절을 짓거나 경전이 낡아 떨어지면 그것을 중수해도 그 공덕이 큰데 절과 탑을 새로 짓고 경전을 출판하면 그 공덕은 한량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시하기를 권해서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여섯 번째 보시공덕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본문에서 또 미래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작은 선근을 머리털이나 모래나 티끌만큼만 심더라도 받는 복과 이익은 비유하여 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작은 선근의 힘은 참으로 엄청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선근은 우리의 과보를 씻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복을 법계에 회향하면 복과 이익을 한량없이 받는 이유
본문
復次地藏아 未來世中에 若有善男子善女人이 遇佛形像과 菩薩形像과 辟支佛形像과 轉輪王形像하여 布施供養하면 得福無量이요 常在人天하여 受勝妙樂하리니 若能廻向法界하면 是人福利는 不可爲喩니라 復次地藏이 未來世中에 若有善男子善女人이 遇大乘經典하여 或聽聞一偈一句하고 發殷重心하여 讚歎恭敬하며 布施供養하면 是人은 獲大果報를 無量無邊하리니 若能廻向法界하면 其福은 不可爲喩리라 復次地藏아 若未來世中에 有善男子善女人이 遇佛塔寺와 大乘經典하여 新者는 布施供養하며 瞻禮讚歎하며 恭敬合掌하고 若遇故者어나 或毁壞者어든 修補營理하되 或獨發心하며 或勸他人하여 同共發心하면 如是等輩는 三十生中에 常爲諸小國王하고 檀越之人은 常爲輪王하여 還以善法으로 敎化諸小國王하리라 復次地藏아 未來世中에 若有善男子善女人이 於佛法中에 所種善根하되 或布施供養하며 或修補塔寺하며 或裝理經典하되 乃至一毛一塵과 一沙一渧라도 如是善事를 但能廻向法界하면 是人功德은 百千生中에 受上妙樂하리니 如但廻向自家眷屬이어나 或自身利益하면 如是之果는 卽三生樂이라 一得萬報리니 是故地藏아 布施因緣이 其事如是니라
해석
「다시 또 지장아, 미래세 중에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부처님의 형상이나 보살의 형상이나 벽지불의 형사이나 전륜왕의 형상을 만나서 보시하고 공양을 올리면 한량없는 복을 얻어 항상 천상과 인간에 나서 뛰어난 묘한 즐거움을 받을 것이며 만약 그 복을 법계에 회향하면 이 사람의 복과 이익은 비유하여 말할 수가 없다. 다시 또 지장아, 미래세 중에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의 경전을 만나 한 게송이나 한 구절을 듣거나 은중한 마음을 발하여 찬탄하고 공경하며 보시하고 공양하게 되면 이 사람은 큰 과보를 얻어서 한량이 없고 끝이 없을 것이며, 만약 이것을 법계에 회향하면 그 복을 비유하여 말할 수가 없다.
다시 또 지장아, 만약 미래세 중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부처님의 탑이나 절이나 대승의 경정을 만나거든 새것에는 보시하고 공양을 올리며 첨예하고 찬탄하며 공경하여 합장하고 만약 묵은 것과 혹 헐리운 것이니 허물어진 것을 만나거든 보수하며 경영하여 다스리고 혹 홀로 발심하거나 혹 많은 사람을 권해서 함께 발심하게 되면 이와 같은 무리들은 삼십 중생을 항상 소국의 왕이 되고 단월의 사람은 항상 전륜왕이 되어 도리어 선법으로 모든 소국의 왕을 교화할 것이다.
다시 또 지장아, 미래세중에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불법 중에서 선근을 심어 혹은 보시하고 공양하며 혹은 탑과 절을 보수하며 혹은 경전을 장식하거나 간수하여 털 하나, 티끌 한 개, 모래 한 알, 물 한 방울만큼의 착한 일을 다만 법계에 회향하게 되면 이 사람의 공덕은 백천생 중에 최상의 묘한 즐거움을 받을 것이며, 다만 자기 집 권속이나 혹 자기의 이익을 회향하게 되면 이와 같은 과보는 곧 삼생의 즐거움이 되어 한번에 만 가지의 보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하므로 지장아, 보시하는 인연이란 이와 같은 것이니라.」
풀이
계속해서 일곱 번째 보시공덕이 이어집니다.
본문에서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부처님의 형상이나 보살의 형상이나 벽지불의 형상이나 전륜왕의 형상을 만나서 보시하고 공양을 올리면 한량없는 복을 얻어 천상과 인간에 태어나고 그 복을 법계에 회향하면 복과 이익을 한량없이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절에 가면 가는 곳마다 불상을 만나게 됩니다. 부처님의 형상과 보살의 형상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복을 지을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불보살상 앞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공양을 올리면 큰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만 내면 복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여덟 번째 보시공덕이 이어집니다.
본문에서 또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경전을 만나 한 구절이나 한 게송을 듣거나 마음을 발하여 찬탄하고 공경하며 보시하고 공양하게 되면 복이 한량없고 그 복을 법계에 회향하면 큰 복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대승경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요의경(了義經)을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는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의경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한 어떤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바로 대승경전을 말합니다. 반면에 불요의경은 방편설을 늘어놓은 경을 말합니다. 불교에는 경전이 많기 때문에 수많은 방편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하다 보면 어떤 것이 방편이고 어떤 것이 진실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 이야기 중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방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대승경 또는 존중할 만한 경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요의경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요의경은 의지하고 불요의경은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왜냐하면 생사가 급하고 인생은 짧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부분은 요의경에 의지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홉 번째 보시공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선남자와 선여인이 부처님의 탑이나 절이나 대승의 경전을 만나거든 새것을 보시하고 공양을 올리며 첨예하고 찬탄, 공경하여 합장하고 헐리운 것과 허물어진 것을 만나거든 보수하며 스스로 발심하여 많은 사람에게 권해서 함께 발심하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소국의 왕이 되고 단월의 사람은 전륜왕이 되어 선법으로 모든 소국의 왕을 교화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 보시공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만약 미래세 중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불법의 선근을 심어서 보시하고 공양하며 탑과 절을 보수하며 경전을 장식하거나 간수하여 아주 작은 착한 일을 법계에 회향하면 천상의 묘한 즐거움을 받고 자기 집 권속이나 이익을 회향하게 되면 이와 같은 과보는 삼생의 즐거움이 되어 한번에 만 가지의 과보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교량보시공덕품에서는 여러 가지 보시공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요즘과 같이 어려운 시대에는 보시정신은 더욱 필요합니다.
보시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보시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공덕을 쌓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보시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베푸는 내용이 되는 물건도 모든 것이 원래 본질적으로 공한 것이어서 거기에는 아무 집착함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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