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도대체 대승기신론은 어떤 논서인가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대승기신론』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대승기신론』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논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들이 경전과 교리를 공부하는 강원이나 강당에서는 중요한 교재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강원에서는 『대승기신론』의 여러 주석서 가운데 원효 스님의 『대승기신론소』와 『대승기신론별기』 등을 중심으로 공부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대승기신론』을 매우 좋아합니다. 불교의 교리나 수행에 관해 이야기할 때 『대승기신론』을 근거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개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사상이 이 한 권의 논서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대승기신론』이 전체적으로 어떤 사상을 담고 있으며, 어떤 수행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승기신론』이 불교에 끼친 영향
『대승기신론』이 동아시아 불교와 승가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큽니다.
역대의 선사들도 『대승기신론』을 많이 인용했습니다. 여러 선사의 어록을 살펴보면 『대승기신론』의 구절이나 사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출가 수행자뿐 아니라 재가의 불교학자들도 『대승기신론』을 꾸준히 연구해 왔습니다. 역대로 『대승기신론』에 관한 주석서가 190여 종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 논서를 연구하고 해석해 왔다는 뜻입니다.
수십 년 전부터는 『대승기신론』이 영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서양에도 알려졌습니다.
대승불교의 핵심 교리가 『대승기신론』 안에 두루 들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한 논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기신론』의 본문은 문체가 매우 간결합니다. 짧고 압축된 문장 안에 많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주석의 도움 없이 혼자 읽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분이나 불교의 핵심을 깊이 공부하려는 분이라면 반드시 공부하게 되는 논서가 『대승기신론』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도 강단에서 『대승기신론』을 여러 차례 강의했지만, 강의를 마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직 미진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의할 때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강의하면서 다시 배운다’라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저의 은사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사를 맡았다고 하더라도 처음 10년 동안은 강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강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저는 지금도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강단에서 강의한 기간이 17년 이상이고, 『대승기신론』을 강의한 기간도 1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 있게 강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고자 합니다.
『대승기신론』의 저자
『대승기신론』의 저자는 누구일까요?
전통적으로는 인도의 마명 보살이 지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마명 보살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수백 년이 지나 출현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마명 보살은 본래 바라문 출신의 학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마가다 지방에서 불교학자들과 논쟁을 벌였지만 이기지 못했고, 이를 계기로 불교에 귀의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 불법을 깊이 연구하면서 대승불교의 중요한 사상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대승기신론』이 실제로 마명 보살의 저술인지를 두고는 오늘날 학계에서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마명 보살의 저술로 전해진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대승기신론』의 두 가지 번역본
『대승기신론』은 한문으로 번역된 두 가지 본이 전해집니다.
하나는 진제 삼장이 번역한 구역본이고, 다른 하나는 당나라 때 실차난타 스님이 번역한 신역본입니다.
진제 삼장은 서기 499년에 태어나 569년에 입적한 인물입니다. 진제 삼장이 번역한 『대승기신론』을 일반적으로 구역본이라고 부릅니다.
실차난타 스님은 당나라 때 활동한 역경승으로, 『팔십화엄』을 번역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실차난타 스님이 번역한 『대승기신론』은 신역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 번역본이 전해지지만, 역대 주석가들은 대부분 진제 삼장이 번역한 구역본을 중심으로 주석을 달았습니다.
기신론 삼소
『대승기신론』에는 많은 주석서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세 주석서를 ‘기신론 삼소’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는 원효 스님의 『대승기신론소』입니다.
두 번째는 법장 스님의 『대승기신론의기』입니다.
세 번째는 혜원 스님의 『대승기신론의소』입니다.
이 세 분의 주석에는 각각 특징이 있습니다.
혜원 스님의 주석은 팔식 체계에 아마라식을 더한 구식설의 관점에서 『대승기신론』을 해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유식에서는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이라는 다섯 감각 의식과 제6의식, 제7말나식, 제8아뢰야식을 말합니다.
혜원 스님은 여기에 제9아마라식을 더하여 『대승기신론』을 해석했습니다.
법장 스님은 현수 법장이라고도 합니다. 화엄종의 매우 유명한 조사입니다.
법장 스님은 화엄 사상을 바탕으로 『대승기신론』을 주석했습니다. 또한 원효 스님의 글을 많이 참고하고 인용했습니다.
이에 비해 원효 스님의 주석은 매우 자유분방합니다.
원효 스님은 어느 한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중관 사상, 유식 사상, 여래장 사상 등을 폭넓게 인용하여 서로 회통시켰습니다.
그래서 기신론 삼소 가운데 원효 스님의 주석을 가장 높이 평가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훌륭한 스님을 꼽으라고 하면 신라시대에는 원효 스님, 고려시대에는 보조국사 지눌 스님,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를 꼽습니다.
원효 스님의 사상은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널리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효 사상의 중요한 기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승기신론』입니다. 원효 스님의 여러 사상은 『대승기신론』을 근간으로 하여 펼쳐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의 핵심 구조
『대승기신론』의 핵심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심·이문·삼대·사신·오행입니다.
즉 한마음, 두 개의 문, 세 가지 위대함, 네 가지 믿음, 다섯 가지 수행입니다.
일심, 하나의 마음
일심은 하나의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존재의 본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의 모든 법문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여러 개로 나누어진 마음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일심이라고 합니다.
이문, 두 개의 문
하나의 마음에는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심진여문입니다.
심진여문은 변하지 않는 마음의 측면입니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본래의 마음이며, 생겨난 적도 없고 사라지거나 파괴된 적도 없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심생멸문입니다.
심생멸문은 마음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변화의 측면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생사와 번뇌의 세계가 심생멸문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마음을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 일심 이문입니다.
삼대, 세 가지 위대함
삼대는 체대·상대·용대를 말합니다.
체대는 마음의 본체가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상대는 마음이 지닌 성품과 공덕의 모습이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용대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작용과 쓰임이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을 본체와 모습, 작용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 삼대입니다.
사신, 네 가지 믿음
사신은 네 가지 믿음을 말합니다.
먼저 진여를 믿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 즉 불·법·승 삼보를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는 수행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행, 다섯 가지 수행
오행은 보시·지계·인욕·정진·지관의 다섯 수행을 말합니다.
보시는 다른 존재에게 베푸는 수행입니다.
지계는 계율을 지키는 수행입니다.
인욕은 어려움과 모욕을 참고 견디는 수행입니다.
정진은 게으르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행입니다.
마지막은 지관 수행입니다.
‘지’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선정이고, ‘관’은 사물의 실상을 살펴보는 지혜입니다.
따라서 다섯 번째 지관 안에 선정과 지혜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다섯 가지 수행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과 상응합니다.
그러므로 『대승기신론』의 수행은 육바라밀을 중심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러한 수행을 실천하기 어려운 근기의 사람들에게 염불 수행을 권하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대승기신론』의 대체적인 핵심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심 이문
일심·이문·삼대·사신·오행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일심 이문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를 “하나의 마음에서 두 개의 문을 연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대승기신론』은 하나의 마음을 진여의 측면과 생멸의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형식적으로는 일심·이문·삼대·사신·오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중관 사상, 유식 사상, 여래장 사상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대승불교 사상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상이 일심 이문의 구조 안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사상과 교리가 일심 이문 안에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중관 사상의 등장
중관 사상은 공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합니다.
중관 사상은 용수 보살에 의해 체계화되었습니다. 불교 사상의 역사를 조금 살펴보면 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중관학파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설일체유부라는 부파가 있었습니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사람에게 영원하고 독립된 자아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사람은 공하고 자아가 없다는 인무아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상을 이루는 법은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걸쳐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설일체유’라는 말도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점차 현상을 이루는 법에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생각으로 굳어질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에도 실체가 있고, 현재에도 실체가 있으며, 미래에도 실체가 존재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때 중관 사상이 등장하여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것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고정된 자아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에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의 가르침이며 법무아의 가르침입니다.
유식 사상과 여래장 사상
그런데 중관 사상이 등장한 뒤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공을 잘못 이해하여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허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독립적이고 고정된 실체 없이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공을 허무주의로 잘못 이해하는 문제를 극복하고 중도의 의미를 새롭게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유식 사상이 발전했습니다.
유식학파는 유가행파라고도 합니다.
이와 함께 여래장 사상도 등장했습니다.
여래장이란 모든 중생에게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 곧 불성이 갖추어져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중관 사상, 유식 사상, 여래장 사상은 각각 발전하다가 『대승기신론』 안에서 서로 만나 하나의 체계로 융합됩니다.
『능가경』과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이 성립하기 이전에 유식 사상과 여래장 사상이 함께 나타나는 대표적인 경전으로 『능가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능가경』은 『대승기신론』의 사상적 성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집니다.
『대승기신론』은 앞선 중관 사상, 유식 사상, 여래장 사상을 하나로 종합했습니다.
이 모든 사상을 하나의 마음, 즉 일심 이문이라는 체계 안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상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그 근원은 부처님의 깨달음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연기법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은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을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의지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호 의존의 관계를 연기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 연기법은 부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만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연기의 법칙은 항상 존재한다.”
이를 법계 상주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법의 세계와 법의 성품은 항상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연기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법계입니다.
법계와 상호 의존성
‘계’라는 말은 세계라고 할 때처럼 일정한 영역이나 경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계라고 할 때는 이 세상이 어떠한 법칙에 의해 유지되고 존속하는지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을 유지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연기의 법칙입니다.
어떤 것도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한 가족은 여러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집니다.
가족과 가족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마을이 모여 군을 이루며, 군이 모여 시를 이루고, 여러 지역이 모여 국가를 이룹니다.
모든 것이 상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관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자연도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든 존재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고통과 괴로움이 생기고, 생사윤회가 이어집니다.
유전 연기와 환멸 연기
연기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전 연기입니다.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윤회하게 됩니다.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죽는 삶을 반복하면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처럼 무지로 인해 생사와 고통이 계속되는 흐름을 유전 연기라고 합니다.
‘유전’이란 흘러가고 돌고 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환멸 연기입니다.
모든 존재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고통의 원인을 없애고 고통이 소멸하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환멸 연기라고 합니다.
따라서 유전 연기는 생사와 윤회로 흘러가는 길이며, 환멸 연기는 번뇌를 소멸하고 열반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연기와 일심 이문
이 두 가지 연기의 흐름은 『대승기신론』의 일심 이문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전 연기는 주로 심생멸문에서 설명되는 생사와 번뇌의 흐름과 연결됩니다.
심생멸문은 마음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계속되는 세계입니다.
무명과 번뇌로 인해 생사윤회가 이어지는 과정이 심생멸문 안에서 설명됩니다.
반면 환멸의 길은 진여를 깨닫고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수행의 방향과 연결됩니다.
진여는 허망하지 않으므로 ‘진’이라고 하고, 변하지 않으므로 ‘여’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의 참된 성품은 생겨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진여문은 이러한 마음의 참된 성품을 깨닫는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공부하면서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화 통화로 설명한 연기법
제가 강당에서 강의할 때 다른 강원의 한 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스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연기법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고, 내가 스님의 전화를 받는 것, 이것이 서로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연기라고 합니다.”
스님과 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면 스님이 전화를 해도 내가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해도 스님이 알아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과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통해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연기입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연기를 마음이라고 하는데, 연기가 어떻게 마음입니까?”
그래서 제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나를 알고 내가 스님을 아는 것은 마음입니다. 서로 알고 인식하는 마음에 의해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연기를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매우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유식 사상과 여래장 사상의 보완
『대승기신론』의 흥미로운 점은 유식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유식 교학의 모든 설명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식 사상의 특징적인 가르침 가운데 종자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정보가 마음에 저장된다고 설명하는데, 이렇게 마음에 저장된 잠재적인 힘을 종자라고 합니다.
유식에는 종자설과 훈습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기신론』은 유식학의 종자설을 그대로 전개하기보다는 훈습의 구조를 중심으로 마음의 변화와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또한 유식 사상에서는 중생이 왜 중생의 상태가 되었으며, 왜 고통을 받는지를 매우 정교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래 마음이 청정하다는 자성 청정심에 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반대로 여래장 사상은 자성 청정심을 잘 설명합니다.
모든 중생의 본래 마음이 청정하고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중생이 어째서 번뇌에 물들고 중생의 상태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대승기신론』은 유식 사상과 여래장 사상의 장점을 결합합니다.
유식 사상의 아뢰야식과 여래장 사상의 자성 청정심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설명합니다.
마음에는 본래 청정한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무명의 영향을 받아 생멸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번뇌가 소멸하면 새롭게 청정한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갖추어져 있던 청정한 성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중관 사상이 두 사상을 연결한다
유식 사상과 여래장 사상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사상이 중관의 공 사상입니다.
원효 스님은 이 부분을 매우 탁월하게 설명했습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깨달음을 설명할 때 본각·불각·시각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사용합니다.
본각은 모든 중생의 마음이 본래 깨달음의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불각은 그 본래의 깨달음을 알지 못하는 무명의 상태입니다.
시각은 수행을 통해 무명에서 벗어나 본래의 깨달음을 자각해 가는 과정입니다.
본각과 불각, 시각의 관계는 『대승기신론』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세 가지 관계를 탁월하게 설명한 분이 원효 스님입니다.
원효 스님은 중관의 공 사상과 공의 논리를 바탕으로 본각·불각·시각의 관계를 풀어냈습니다.
따라서 『대승기신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관 사상도 알아야 합니다.
『대승기신론』은 융합의 사상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유식은 기존 유식학파에서 설명하는 유식과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또한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여래장도 기존 여래장 사상에서 설명하는 여래장과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대승기신론』은 유식 사상, 여래장 사상, 중관 사상을 하나의 마음 안에서 새롭게 융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승기신론』의 사상을 ‘융합의 극치’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대승불교 사상을 하나의 마음 안에서 회통시킨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의 또 다른 특징, 수행론
『대승기신론』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수행론입니다.
앞으로 『대승기신론』을 공부하면서 가능하면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21세기는 수행의 시대이며 명상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불자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수행에 관심을 가지는 분도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기도는 매우 열심히 하면서도 법문을 잘 듣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잘못된 견해에 빠지거나 그릇된 길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동시에 법문도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법문을 통해 바른 견해인 정견을 세워야 합니다.
반대로 기도도 하고 법문도 잘 듣지만, 실제로 수행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와 법문의 뒷받침이 없는 수행 역시 올바른 수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도와 교학과 수행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승기신론』의 구성에서도 마지막에는 수행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대승기신론』의 모든 사상과 교리는 수행으로 회향됩니다.
마무리
오늘은 『대승기신론』이 어떤 논서인지,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사상이 들어 있는지를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대승기신론』은 중관 사상, 유식 사상, 여래장 사상을 하나의 마음인 일심 이문 안에서 융합한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논서입니다.
또한 일심·이문·삼대·사신·오행을 통해 마음의 본질과 생사윤회의 원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길을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대승기신론』의 전체 구성을 조금 더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논서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으며, 각각의 내용이 무엇을 설명하는지 전체적인 구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공부할 때 사용할 교재에 대해서도 함께 안내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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