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 해설 - 제8장 염라왕중찬탄품(閻羅王衆讚歎品)
- 지장경-제1. 도리천에서 신통을 보이다. [忉利天宮神通品]
- 지장경-제2. 분신들을 모으다 [分身集會品]
- 지장경-제3. 중생들의 업을 인연을 관찰하다 [觀衆生業緣品]
- 지장경-제4. 염부제 중생들의 업으로 느낌 [閻浮濟衆生業感品]
- 지장경-제5. 지옥들의 이름 [地獄名號品]
- 지장경-제6. 여래가 찬탄하시다 [如來讚歎品]
- 지장경-제7.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이익함 [利益存亡品]
- 지장경-제8. 염라왕들이 찬탄하다 [閻羅王衆讚歎品]
- 지장경-제9.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라. [稱佛名號品]
- 지장경-제10. 보시한 공덕을 헤아리다 [校量布施功德緣品]
- 지장경-제11. 땅의 신들이 법을 보호하다 [地神護法品]
- 지장경-제12. 보고 듣는 이익 [繭門利益品]
- 지장경-제13. 사람들에게 부촉하다 [囑累人天品]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악습에 대해 말하다
염라왕중찬탄품은 부처님께서 염라왕들이 업으로 태어난 귀신들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불도를 이루고 중생교화의 원력으로 화현 하다고 찬탄하시므로 이 같은 명칭이 붙었습니다.
이 부분의 줄거리를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지장경을 설하시는 도리천에 수많은 귀왕과 염라천자가 부처님과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힘입어서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염라천자는 부처님께 지장보살은 육도 중에 계시면서 불가사의한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함에도 불구하고, 왜 중생들은 죄보에서 잠시 벗어났다가는 다시 악도에 떨어지는지, 그리고 왜 한 번의 구제로 영원한 해탈을 얻지 못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악습, 즉 업으로 설명하십니다. 어떤 길 잃은 사람을 바로 인도 하더라도 그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다시 길을 잃는 수가 있는 것처럼, 지장보살도 중생을 교화하지만 중생들이 깨침의 눈을 얻지 못해서 다시 미혹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한 번의 구제로 자신의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교화를 계속합니다.
이때 악도귀왕이 부처님께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당장 완전한 해탈을 얻지 못할지라도 단 한 가지의 불도를 향한 선행만 하면 귀왕들이 그들을 보호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염라천자와 귀왕들의 중생 보살피는 일을 칭찬하십니다.
이때 다시 주명귀왕이 나서서 부처님께 중생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착한 일로 보답해야 하거늘, 그와 반대로 오히려 산목숨을 죽이는 일 등을 저지르니 재앙을 스스로 부르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귀왕들은 중생이 불심을 가지기만 하면 선악을 묻지 않고 구하려 하는데 선행을 한다면 귀왕들의 중생 구하는 일은 마땅한 도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주명귀왕에게 미래 세에 큰 원을 세우고 생사윤회의 중생들을 보호하고 타이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지장보살에게 귀왕들에게 내리는 수기를 설하십니다. 주명귀왕은 무량겁의 긴 세월 동안 중생을 옹호해 오고 있으니, 그들은 평범한 귀신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할 원력으로 화현해 나타났으므로, 백 칠십 겁을 지나서 마땅히 성불하리라는 것입니다.
염라왕 중 찬탄품에서는 지옥을 관장하는 왕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왕으로 10 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 10대 왕은 각각 분담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지옥을 관장하는 왕을 소개하다
사후세계의 10대왕
제1 진광대왕은 죄인을 추려 내는 일을 맡으면서도 중생을 구하겠다는 본래의 서원을 지키려고 합니다.
제2 초강대왕은 아비규환의 지옥중생에게 자비심을 심어 줍니다.
제3 송제대왕은 중생들이 원을 따라 왕생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제4 오관대왕은 중생의 업을 저울질하는 일을 합니다.
제5 염라대왕은 화엄이라는 이름의 국토에 중생들을 보살로 만들어 그곳을 꽉 차게 하는 일을 합니다.
제6 변성대왕은 지옥고통이 아무리 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끝이 있으므로, 중생들이 기한을 채우고 출옥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제7 태산대왕은 공양을 청하고 극락세계로 갈 좋은 안을 내놓은 일을 합니다.
제8 평등대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중생을 구하는 일을 숨어서 합니다.
제9 도시대왕은 날마다 직접 극락 길로 가는 예를 보이면서 지옥의 불을 끕니다.
제10 오도전륜대왕은 자비심을 일으켜서 자신을 낮추고 중생들이 불도 이루기를 권합니다.
염라왕들이 지장보살을 찬탄하다
본문
爾時鐵圍山內에 有無量鬼王하니 與閻羅天子로 俱詣忉利하야 來到佛所하니 所謂惡毒鬼王과 多惡鬼王과 大爭鬼王과 白虎鬼王과 血虎鬼王과 赤虎鬼王과 散殃鬼王과 飛身鬼王과 電光鬼王과 狼牙鬼王과 天眼鬼王과 瞰獸鬼王과 負石鬼王과 主耗鬼王과 主禍鬼王과 主福鬼王과 主食鬼王과 主財鬼王과 主畜鬼王과 主禽鬼王과 主獸鬼王과 主魅鬼王과 主産鬼王과 主命鬼王과 主疾鬼王과 主險鬼王과 三目鬼王과 四目鬼王과 五目鬼王과 祁利失王과 大祁利失王과 祁利叉王과 大祁利叉王과 阿那吒王과 大阿那吒王과 如是等大鬼王이 各各與百千諸小鬼王으로 盡居閻浮提하여 各有所執하며 各有所住하더니 是諸鬼王이 與閻羅天子로 承佛威神과 及地藏菩薩摩訶薩力하야 俱詣忉利하여 在一面立이러라
해석
그때에 철위산 안에 많은 귀왕들이 염라천자와 함께 도리천궁으로 와서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르렀다.
악독귀왕과 다악귀왕과 대쟁귀왕과 백호귀왕과 혈호귀왕과 적호귀왕과 산앙귀왕과 비신귀왕과 전광귀왕과 낳아귀왕과 천안귀왕과 담수귀왕과 부석귀왕과 주모귀왕과 주화귀왕과 주복귀왕과 주식귀왕과 주재귀왕과 주축귀왕과 주금귀왕과 주수귀왕과 주매귀왕과 주산귀왕과 주명귀왕과 주질귀왕과 주험귀왕과 삼목귀왕과 사목귀왕과 오목귀왕과 기리실 왕과 대기리실왕과 기리 차왕과 대기리차왕과 아나타왕과 태아나타왕과 같은 많은 대귀왕들이 각각 백천번이나 되는 여러 소귀왕을 거느리고 모두 염부제에 살면서 각각 맡은 것이 있고 각각 머무르는 곳이 있었는데 이러한 모든 귀왕들이 염라천자로 더불어 부처님의 위신과 지장보살마하살의 힘을 얻어 함께 도리천에 참예하여 한쪽으로서 있었다.
풀이
여기서는 염라왕들이 지장보살을 찬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철위산 안에 많은 귀신의 왕들이 염라왕과 함께 도리천궁으로 와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왔습니다. 여기에 여러 귀왕이 등장하고 염라왕 중이 나오는데 염라대왕이 있기 때문에 무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명부전에 가면 귀왕도 있고 염라대왕도 있고 수많은 대왕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수많은 귀신의 왕이 소개되는데 저승 세계 이야기이기 때문에 귀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귀왕이라고 불리는 것은 저승 세계와 이승 세계 둘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우리도 이승에 살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저승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생에서 죽은 입장에서 보면 이승은 저승이 됩니다. 다시 말해 다음 생을 받는 그런 입장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저승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저승이 아니고 이승에 있다고 말합니다. 또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죽어서 저승에 가게 됩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 우리가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를 보내는 사람은 저승에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승에 와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귀왕이라고 하는 것은 유명 세계나 저승에 와 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의 현실 속에 가지고 있는 이러한 요소들을 그렇게 표현해서 부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단 지장경에서 뿐만 아니라 천수경에서도 지옥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도 지옥을 따로 떼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지옥에 비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장경에서는 지옥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고 명부전에는 그림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처럼 형상화되어 있는 그런 지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형상화된 지옥은 부정해도 좋지만 우리가 겪어 던 일상 속의 삶 속에는 지옥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불로써 가슴을 지지는 듯한 그런 분노와 울화를 비롯하여 죽을 것 같은 분노심 등은 화탕지옥보다 더 실감 나는 화탕지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 경전에서는 칼상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칼상지옥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칼로써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쓰라린 아픔, 고통은 우리가 겪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칼이 삐죽삐죽 서 있는 그런 지옥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들이 스스로 겪는 칼상지옥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귀왕도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흔히 경전을 가리키는 말로 심불반조(心佛反照), 반경무이(反經無利)란 말이 있습니다. 경전의 말씀을 마음에 비춰보지 아니하면 경을 아무리 공부해도 이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말씀은 마음의 세계, 우리들 마음이 겪는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전을 우리의 현실에 맞게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는 이유
또 경전은 마음의 세계에서 겪고 있는 모든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전의 원형은 우리가 겪는 마음, 우리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심리작용을 말합니다. 그런 심리작용을 경전이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나 민족, 시대, 습관이 다 다르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어떤 원형만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은 그 시대상황에 따라서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말한 분명한 사실을 우리가 액면 그대로 이해한다면 바로 소화할 수 없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쌀을 삼키고 살을 그대로 내놓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서 소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경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에 담겨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설명할 필요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경전을 읽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경전 속에 담겨 있는 뜻을 정확하게 우리의 현실에 맞게 이해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불교는 현실을 떠나서 설명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맞게 이해하고 소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수많은 귀왕이 소개되어 있는 것은 우리들 삶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요소들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구체적인 어떤 귀신 그 자체로 보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수많은 귀신들은 각각 맡은 바 소임을 가지고 있는 그런 귀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염라천자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지장보살을 찬탄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염라천자의 권속들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많은 권속을 통솔하여 함께 도리천궁에 온 것은 자신의 위신도 세우고 어떤 모양을 갖추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큰 대회가 열리면 한 사람만 나가는 게 아니고 거기에 관계되는 임원과 관계자들이 다 함께 참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염라왕 중 찬탄품에 나오는 첫 부분의 배경도 말하자면 그와 같은 현상입니다.
여기서는 염라귀왕과 연관되는 모든 귀왕들이 쭈욱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본문
爾時에 閻羅天子가 胡跪合掌하야 白佛言하시되 世尊하 我等今者에 與諸鬼王으로 承佛威神과 及地藏菩薩摩訶薩力하사 方得詣此忉利大會하며 亦是我等이 獲善利故니다 我今有小疑事하야 敢問世尊하오니 惟願世尊하 慈悲爲我宣說하소서 佛告閻羅天子하되 恣汝所問하나니 吾爲汝說하리라 是時에 閻羅天子가 瞻禮世尊하고 及廻視地藏菩薩하며 而白佛言하되 世尊하 我觀地藏菩薩이 在六道中하사 百千方便으로 而度罪苦衆生하되 不辭疲倦하나니 是大菩薩이 有如是不可思議神通之事어늘 然諸衆生이 脫獲罪報라가 未久之間에 又墮惡道하니 世尊하 是地藏菩薩이 旣有如是不可思議神力이어늘 云何衆生이 而不依止善道하여 永取解脫하나이까 唯願世尊하 爲我解說하소서
해석
그때에 염라천자가 호궤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여러 귀왕과 더불어 부처님의 위신과 지장보살 마하살의 힘을 이어 바야흐로 이 도리천 대회에 참예함을 얻었음은 이 또한 저희들도 선한 이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조금 의심스러운 일이 있어 감히 세존께 묻사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옵서는 자비로 여기시고 저희들을 위하여 선설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염라천자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마음대로 물어보아라. 내 너를 위해 설하리라.」
이때에 염라천자가 세존을 첨앙 하여 예배를 드린 후 지장보살을 돌아보면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관하오니 지장보살께서는 육도 중에 계시면서 백천 가지 방편으로 죄고의 중생을 제도하시느라고 피곤하고 게으름을 사양하지 아니하시니 이 대보살에게는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신통스러운 일이 있겠습니다만 그러하오나 모든 중생들이 죄보의 벗어남을 얻었다가 오래지 아니하여 다시 악도에 떨어지곤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지장보살에게 이미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신력이 있는데 어찌하여 중생들은 선도에 의지하여 영원한 해탈을 취하지 아니합니까.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해설하여 주십시오.」
풀이
여기서는 염라천자와 부처님의 대화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본문에서 염라천자는 부처님께 지금 도리천 대회에 참례함을 얻었음은 선한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이런 일에 참석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귀신이라고 하면 다 안 좋은 걸로 생각하는데 의외로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부처님의 권속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염라천자는 부처님께 지장보살은 육도에 계시면서 백천 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라 피곤하지만 모든 중생들이 죄보의 벗어남을 얻었다가 오래지 아니하여 다시 악도에 떨어지는데 왜 그렇게 되며, 중생들은 선도에 의지하여 영원한 해탈을 하지 못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묻습니다. 다시 말해 지장보살의 위신력과 원력은 정말 위대한데 왜 한번 제도하면 끝이 아니라 다시 악도에 떨어지는지 궁금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왜 자기 업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다시 되풀이하는지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인간의 심리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작심삼일이라고 해서 한번 마음을 다져서 새로이 출발하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도루묵이 되고 맙니다. 한번 제도되었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좋은 일만 하는 보살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정도 보살이 되었다가는 곧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의 육도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면 어쩌다 한 번씩은 보살 노릇도 하고 부처 노릇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번씩 지옥 노릇도 하고, 아귀․축생 노릇도 스스럼없이 하게 됩니다.
법화경에서는 한 인간이 한 찰나, 한 순간 속에 삼천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삼천 가지 요소를 크게 말하면 십성(十聖)이라고 해서 열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냅니다. 그 열 가지 모습은 다시 사 성육범(四聖六凡)이라고 하는데 네 가지는 성인의 요소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 여섯 가지는 범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삼천 가지를 축소하면 사 성육범의 열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중생의 네 가지 성인의 요소 중 첫째는 부처님의 요소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끔 부처의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24시간 내내 꾸준하게 부처의 행동을 할 수는 없지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부처의 행동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또한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번씩 아수라나 아귀의 어떤 습성을 나타낼 때가 있습니다. 착한 사람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겐 모두 그런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네 가지 성인의 요소 중 두 번째는 보살의 모습이고 그다음은 성문과 연각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 성인의 요소를 우리가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 유범은 흔히 육도 라고 하는데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의 여섯 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이상의 열 가지 요소를 우리가 다 함께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열 가지 요소 중에서 밖으로 표현될 때 어떤 요소가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한 가지 모습이 아닌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나쁘다고 결론짓는 것도 잘못입니다. 우리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열 가지 요소가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로만 그 사람을 단정 짓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수천 가지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의 교리는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불교 교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매 순간 확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우리의 하루생활 속에서도 수천 가지의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회사에 나가서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옥처럼 괴로워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마음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굳이 마음관리자를 두지 않고도 마음을 잘 다스리려면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관리를 잘하기 위해서 불교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불교에는 유루(有漏)와 무루(無漏)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뇌가 있다. 번뇌가 없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번뇌, 즉 불선한 마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지은 복이 새어나간다 [有漏], 또는 복이 새어나가지 않는다 [無漏]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판단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 일도 내용에 있어서는 나쁜 일이 될 수가 있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른 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선행을 하고 복을 지었으나 어리석은 마음으로 한 것이기에 그것이 모두 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지은 복마저 새어나가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강강중생을 제도하기는 쉽지 않다
염부제 중생이 스스로 악습을 무겁게 맺다
본문
佛告閻羅天子하시되 南閻浮提衆生이 其性剛强하야 難調難伏커늘 是大菩薩이 於百千劫에 頭頭救拔如是衆生하야 早令解脫케하며 是諸罪人도 乃至墮大惡趣하야 菩薩以方便力으로 出拔根本業緣하야 而遣悟宿世之事언마는 自是閻浮衆生이 結惡習重하야 旋出旋入하야 勞斯菩薩하고 久經劫數하야 而作度脫케하나니 譬如有人이 迷失本家하고 誤入險道할새 其險道中에 多諸夜叉와 及虎狼獅子와 蚖蛇蝮蝎하니라 如是迷人이 在險道中하야 須臾之間에 卽遭諸毒커늘 有一知識이 多解大術하야 善禁是毒과 乃及夜叉諸惡毒等이러니 忽逢迷人이 欲進險道어늘 而語之言하되 咄哉男子여 爲何事故로 而入此路하며 有何異術하야 能制諸毒인가 是迷路人이 忽聞是語하고 方知險道하야 卽便退步하며 求出此路어늘 是善知識이 提携接手하고 引出險道하야 免諸惡毒하고 至于好道하야 令得安樂케하고 而語之言하되 咄哉迷人아 自今以後에 勿履此道하라 此路入者는 卒難得出하며 復損性命하리라하니 是迷路人도 亦生感動하며 臨別之時에 知識又言하대 若見知親과 及諸路人이 若男若女어든 言於此路에 多諸惡毒일새 喪失性命이라하야 無令是衆으로 自取其死하라하니라
해석
부처님께서 염라천자에게 이르시기를 「남염부제의 중생들은 그 성질이 굳세고 강해서 다스리기도 어렵고 복종시키기도 어렵다. 이 대보살은 백천겁을 지내오면서 하나하나 구원하여서 빼내었다. 이와 같은 중생들은 일찍이 해탈시키었는데 이 죄보를 받은 사람이나 대악취에 떨어진 사람까지도 보살이 방편력을 가지고 근본 업연에서 빼내어 숙세의 일을 깨닫게 하였건만 이 염부제 중생이 스스로 악습을 무겁게 맺어 돌아 나왔는가 하면 곧 되돌아 들어가서 이 보살을 괴롭히며 오랜 겁수를 지낸 뒤에 가서 도탈을 짓게 된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정신이 흐려서 본집을 잃어버리고 잘못 험한 길로 들어갔는데 그 험한 길 가운데는 여러 야차와 호랑이와 사자와 뱀과 독사가 많았는데 이와 같이 길 잃은 사람이 험한 길 가운데서 잠깐 사이에 곧 여러 가지 독을 만나게 된다. 어떤 지식있는 사람이 있어 큰 술법을 많이 알고 이러한 독과 야차와 모든 악독들을 잘 금지시키다가 문득 길잃은 사람을 만나니 험한 길로 나아가고자 하므로 말하기를 「애달프구나 남자여 무슨 일 때문에 이 길로 들어가며 어떤 특별한 술법이라도 있어 능히 모든 독을 막아 내겠는가」 하니 이 길잃은 사람이 문득 이 말을 듣고 바야흐로 험한 길인줄 알고 곧 걸음을 물러나서 이 길에서 나가기를 구하거늘 이 선지식이 손을 잡아 인도하여 험한 길에서 끓어내어 모든 악독을 면하게 하고 좋은 길로 이르게 하여 그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고는 말하기를 애닯구나 길 잃은 사람이여 오늘부터 이 뒤로는 이 길로 들어가지 말라. 이 길로 들어가는 자는 마침내 나오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또한 설명조차 잃게 된다고 하니 이 길 잃은 사람도 또한 감동하는 마음이 생겼었다. 이별할 때를 당해서 지식이 또 말하기를 「만약 친한 사람이나 아는 사람이나 모든 길가는 사람이 남자거나 여자거나를 보거든 이 길에는 여러 가지 독과 악이 많아서 생명을 잃게 된다고 말하여 이러한 무리들로 하여금 스스로 죽음을 취하는 일이 없게 하라.」함과 같다.
풀이
이 대목에서도 염라천자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염라천자는 부처님께 지장보살이 한번 제도해 놓으면 처음에는 제도된 것처럼 보이다가 중생이 어느덧 또다시 죄악의 길로 빠지니까 거기에 대해서 의심스러워 질문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염라천자에게 남염부제의 중생들은 그 성질이 굳세고 강해서 다스리기도 어렵고 복종시키기도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도 여러 번 강강중생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강강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바로 경전입니다. 따지고 보면 강강중생 때문에 지장경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지장보살이 굉장히 인기가 있고 지장경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경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지장경 속에 강강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그런 강강중생을 제도하기 어렵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또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하나하나 구원하면서 악도에서 빼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지장보살이 계속 가르치고 다독거리고 제도하여 인과의 도리를 깨닫게 했지만 악습을 무겁게 맺어 또다시 과보를 짓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중생은 선업을 짓다가도 악한 인연을 만나면 또 악한 업을 짓고 잘 좋은 행동을 하다가도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되풀이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경전에서 밝힌 것처럼 늘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지장보살의 가르침을 통해서 모두 제도되었는데 또다시 죄업의 윤회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속성 때문에 지장보살과 같은 강한 원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끊임없이 선업과 악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리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서 깨닫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교경전에는 비유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불난 집에 비유한 것은 정말 실감 나는 비유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비유하기를 어떤 사람이 정신이 흐려서 본집을 잃어버리고 험한 길로 들어갔는데 야차와 호랑이와 사자와 뱀과 독사가 많아 길 잃은 사람이 잠깐 사이에 여러 가지 독을 만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어 큰 술법을 많이 알고 이러한 독과 야차와 모든 악독들을 잘 금지시키다가 문득 길 잃은 사람을 만나니 험한 길로 나아가고자 하므로 그 길로 가지 못하도록 일러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야차, 호랑이, 사자, 뱀, 독사가 우글거리는 것으로 표현되듯이 두렵고 위험할 때가 많습니다. 법화경에서 불난 집이라고 표현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사바세계를 야차, 호랑이, 사자, 뱀, 독사 등이 가득한 곳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러한 험한 세상에서 한 선지식을 만나게 되면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의 손을 잡고 그 인도에 따라가면 악독을 면하여 좋은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선지식은 바로 부처님과의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선지식은 다시는 험한 길로 가지 말도록 당부합니다. 선지식은 길 잃은 사람을 잘 가르치고 인도해서 악도에 꺼낸 다음 또다시 당부의 말을 일러줍니다.
실제 우리가 불교를 만나서 뭔가 깨달음을 얻고 마음에 이익됨이 있고,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가르침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그것을 꼭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불교를 통해서 삶의 바른 길을 제대로 가도록 이끌어 줄 의무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널리 알려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이익됨을 얻도록 하는 것이 없다면 별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고 겸손할 것이 아니라 조금 알아도 그것을 전할 수 있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에게 공덕을 짓겠다고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수많은 세월을 지내거나 부처님의 평상이 되어서 온 지구를 다 덮을 수 있다 하더라도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 사람들을 깨우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부처님을 위하고 공양하고 부처님께 은혜를 갚는다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불교의 요체 중의 하나가 바로 중생제도입니다. 어떤 면에서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생제도가 목적이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만큼만 이웃에게 베풀어도 그것은 큰 제도가 됩니다.
본문에서 잘못 길을 든 사람이 자기가 선지식을 만나서 그 길을 잘 빠져나왔듯이 자기도 다른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일러줄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는 부처님께서 태자의 몸으로 출가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온몸을 던져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업을 거듭 맺게 되면 영원히 지옥에서 해탈할 때가 없다
본문
是故地藏菩薩이 具大慈悲하여 救拔罪苦衆生하여 欲生天人中하여 令受妙樂커든 是諸罪衆이 知業道苦하여 脫得出離하여 永不再歷하나니 如迷路人이 誤入險道라가 遇善知識하여 引接令出하여 永不復入하며 逢見他人하여 復勸莫入하면 自然因是迷故로 解脫離竟하며 更不復入이라하리라 若再履踐하여 猶尙迷誤하여 不覺舊曾所落險道하고 或致失命하면 如墮惡趣衆生을 地藏菩薩이 方便力故로 使令解脫하여 生人天中케하여도 旋又再入하나니 若業結重하면 永處地獄하여 無解脫時리라
해석
이러므로 지장보살이 대자비를 갖추어서 죄고중생을 구발 하여 천상과 인간 중에 나게 하여 하여금 묘한 낙을 받게 하고자 하거든 이 모든 죄지은 무리가 업도의 괴로움을 알아서 벗어남을 얻어 빠져나와서는 영원히 두 번 그 길을 밟지 아니함이 길을 잃은 사람이 잘못 험한 길로 들어갔다가 선지식을 만나 인접하여 나오게 하여 영원히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함과 같다.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도 다시 권하여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자기도 그렇게 한 것이 이 미한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벗어났으니, 이곳을 떠나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할 것이다.
만약 두 번 그 길을 밟게 되면 오히려 아직도 미오 하여 옛날 일지기 험한 길에 떨어졌던 것을 깨닫지 못하고 혹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는데 마치 악취에 떨어진 중생이 지장보살의 방편력 때문에 해탈하여 인간과 천상에 나게 하였으나 또다시 들어감과 같은 것이다.
만약 업을 거듭 맺게 되면 영원히 지옥에서 해탈할 때가 없을 것이다.
풀이
본문에서 지장보살이 대자비를 갖추고 중생을 구하여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게 하여 훌륭한 즐거움을 받도록 해주며 하거든 이 모든 죄지은 중생이 업도의 괴로움을 알아 악도에서 벗어나 영원히 다시는 그 길에 들어서지 않게 하나니, 이것은 길 잃은 사람이 다시는 험한 길에 들어가지 아니함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악도에 들락날락하면서 최종적으로 불교를 만나 다시는 악에 빠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다시는 악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할 것이며 만약 두 번 그 길을 밟게 되면 아직도 미혹해서 일찍이 험한 길에 떨어졌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 그것은 마치 악취에 떨어진 중생을 지장보살이 방편의 힘으로 구해 내어서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게 하나, 또다시 악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며 만약 업을 거듭 맺게 되면 지옥에서 해탈할 때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한 두 번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만 계속해서 악한 인연을 맺으면 그 악의 세계에서 좀처럼 발을 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귀왕이 업보에 대해 말하다
본문
爾時惡毒鬼王이 合掌恭敬하여 白佛言하대 世尊하 我等諸鬼王이 其數無量이라 在閻浮提하여 或利益人하며 或損害人하여 各各不同은 然是業報니다 使我眷屬으로 遊行世界에 多惡少善이라 過人家庭커나 或城邑聚落莊園房舍에 或有男子女人이 修毫髮善事하대 乃至懸一幡一盖하며 少香少華로 供養佛像과 及菩薩像하며 或轉讀尊經하며 燒香供養一句一偈라도 我等鬼王이 敬禮是人하대 如過去現在未來諸佛하여 勅諸小鬼에 各有大力과 及土地分하여 更令衛護하여 不令惡事橫事와 惡病橫病과 乃至不如意事近於此舍等處케하거든 何況入其門戶리까
해석
그때에 악독귀왕이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들 모든 귀왕은 그 수가 한량이 없습니다. 염부제에서 혹 사람을 이익되게도 하며 혹 사람을 손해 보게도 하여 각각 같지 아니함은 업보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저희 권속들로 하여금 세계를 유행함에 악함은 많고 선함은 적어서 사람의 가정이나 혹 성읍이나 마을이나 장원이나 방사를 지날 때 혹 어떤 남자나 여인이 털끝만 한 적은 선한 일을 닦으면서 한 개의 깃발이나 한 개의 일산을 달거나 적은 향과 적은 꽃으로 불상과 보살상에 공양을 올리고 혹 높으신 경문을 전독 하며 향을 살아한 구절이나 한 게송에 공양함에 이를지라도 저희들 귀왕은 이 사람에게 공경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같이 하며 모든 소귀들에게 명령하여 각각 큰 힘과 도지를 관장한 이에게 다시 위호 하도록 명령하고 악사나 횡사나 악병이나 횡병이나 내지 떴고 같지 아니한 일이 이 집 근처에 얼씬 거리지도 못하게 하거든 하물며 어찌 그 문호에 들어가게 하겠습니까」
풀이
여기서도 부처님과 귀왕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악독귀왕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저희들 모든 귀왕은 그 수가 한량이 없어서 때때로 사람을 이익 되게 하기도 하고 사람을 손해 보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각각의 업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업보 때문에 사람에게 이익도 되게 하고 손해도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업보는 귀왕이 말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은 업보로 귀결됩니다. 자기의 과보는 전부 자업자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업은 귀신을 접하거나 귀신 때문이라거나 제삼자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귀신이라는 것은 결국 나 아닌 제삼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귀신은 제 삼의 힘을 말하는 것인데 업이란 귀신의 힘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 귀왕들은 온갖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악함은 많고 선함이 적은 것을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털끝 만한 적은 선한 일을 갖고 있으면 귀왕은 이 사람에게 공경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같이 대하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부처님 앞에 깃발을 하나 올린다든지 작은 꽃송이를 올린다든지 하는 조그마한 선행이라도 그것을 확대시키고 초점을 맞추어서 그 사람들을 전부 제도하는 그런 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작은 선, 작은 선행, 착한 일 한 가지만 있어도 하루에 백 가지 악한 일을 한 것이 다 소멸된다는 이야기와 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선한 일을 확대시켜 거기에다 어떤 무게를 싣고 그것을 중심적으로 부각하면 차츰차츰 악한 일은 감추어지고 착한 일은 확대되어 악은 순식간에 선으로 반전되어 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냥 한 개로 태산을 태울 수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평생을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안 좋은 일 한 가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상점에서 과자를 하나 집어 먹었는데 주인으로부터 아주 호된 꾸지람을 듣고 난 후 그것이 상처가 되어 평생을 악한 생활을 하는 조건이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보듯이 아주 하찮은 일 때문에 엄청난 결과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착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소설가는 문인이 되었던 동기로 초등학교 선생님의 작은 칭찬에서 비롯되었다는 회고록을 써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불씨 하나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으로 생각할 때 성냥 하나로 큰 산을 태울 수 있는 이치나 긍정적인 면에서 볼 때 지나가는 칭찬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일생을 어떤 성공으로 만들어 놓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예들은 전부 작은 선행과 연관을 시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 촛불을 켜고 향을 올리는 그 마음 하나가 발전하여 성불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에서 귀왕은 부처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고 명세를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소귀왕들에게 명령하여 큰 힘과 토지를 관장하는 이에게 다시 호위하도록 하여서 다시 사나운 횡액이나 악한 병, 뜻과 같지 않은 일들이 사람 집 근처에서는 일어나지 않게 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부처님께서 귀왕들에게 칭찬하다
본문
佛讚鬼王하되 善哉善哉라 汝等及與閻羅天子는 能如是擁護善男子善女人하라 吾亦令於梵王帝釋하여 衛護汝等하리라 說是語時에 會中有一鬼王하니 名曰主命이라 白佛言하되 世尊하 我本業緣으로 主其閻浮提人壽命하여 生時死時를 我皆主知하나니 在我本願하야 甚大利益이언만 自是衆生이 不會我意하여 致令生死하여 俱不得安케하니라 何以故오 是閻浮提人의 初生之時에 不問男女하고 將欲生時에 但作善事하여 增益舍宅하면 自令土地로 無量歡喜하여 擁護子母하여 得大安樂하여 利益眷屬케하리니 或已生下하여는 愼勿殺生이어늘 取諸鮮味하여 供給産母하며 及廣聚眷屬하여 飮酒食肉하며 歌樂絃菅하여 能令子母로 不得安樂케하나니 何以故요 是産難時에 有無數惡鬼와 及魍魎精魅가 欲食腥血커든 是我早令舍宅土地靈祇로 荷護子母하여 使令安樂하여 而得利益케하니 如是之人이 見安樂故로 便合設福하여 答諸土地어늘 翻爲殺生하여 聚會眷屬할새 以是之故로 犯殃自受하여 子母俱損케하나이다 又閻浮提臨命終人을 不問善惡하고 我欲令是命終之人으로 不落惡道케하거든 何況自修善根하여 增我力故리까 是閻浮提行善之人이 臨命終時에도 亦有百千惡毒鬼神이 或變作父母하며 乃至諸眷屬하여 引接亡人하여 令落惡道케하나니 何況本造惡者리오
해석
부처님께서 귀왕을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구나, 너희들고 염라천자는 능히 이와 같이 선남자와 선여인을 옹호하도록 하라. 내 또한 범왕과 제석에게 명령하여 너희들을 위호 하게 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회중에 한 귀왕이 있는데 이름을 주명이라 하였다.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본래 업연으로 염부제의 사람의 수명을 맡아 날 때와 죽을 때를 제가 모두 알아서 주관합니다. 저희 본원은 매우 큰 이익을 주고자 하지만은 이 중생들이 저희 뜻을 알지 못하고 그들로 하여금 생사를 이루게 한다 하여 모두 편안함을 얻지 못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이것은 염부제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에 남자이거나 여자를 불문하고 장차 나고자 할 때 다만 착한 일을 지어 사택을 증익하게 하면 토지신으로 하여금 절로 환희함이 한량없이 아들과 어머니를 옹호하여 큰 안락함을 얻고, 권속을 이익되게 할 것이며, 혹 이미 난 뒤에도 삼가서 생물을 죽이지 말아야 되거든 모든 신 선한 음식을 가져다가 산모에게 공급하고 널리 권속을 모아 술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노래하고 거문고 타며 피리 불어서 능히 자모로 하여금 안락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이것은 아기를 낳을 때에 무수한 악귀와 이매와 망량 같은 잡귀들이 비린 피를 먹고자 하거늘 이것은 내가 미리 사택과 토지의 영신에게 지시하여 아들과 어머니를 옹호하여 그들로 하여금 안락하고 이익을 얻게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안락함을 보았기 때문에 문득 복을 베풀어 모든 토지신에게 보답하는 것이 합당하거늘 도리어 생물을 죽이고 권속을 모았으니 이것 때문에 재앙을 범하여 스스로 받으므로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손상을 입습니다. 또한 염부제의 명을 마침에 이른 사람을 선악을 묻지 아니하고 저는 그 명을 마치는 사람으로 하여금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어찌 스스로 선근을 닦아서 나의 힘을 도와준 사람이겠습니까.
이 염부제에서 선을 행한 사람이 명을 마칠 때를 당해서 또한 백천의 악독한 귀신이 혹은 부모로 변신하고 모든 권속으로 변하여 망인을 인접하여 악도에 떨어지게 하거든 하물며 어찌 본래 악을 지은 자이겠습니까.」
풀이
귀왕이 부처님께 맹세하는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 귀왕들에게 칭찬하는 대목입니다.
귀왕의 맹세를 듣고 부처님께서는 염라천자와 더불어 많은 사람을 옹호하니 또다시 범왕과 제석에게 귀왕의 무리들을 지키고 돕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염라대왕과 여러 귀왕들은 선남자, 선여인을 옹호하고 또 범왕과 제석천은 염라대왕과 귀왕들을 옹호하게 하여 서로서로 도와주는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목숨을 주관하는 귀신인 주명귀왕이 부처님께 자신은 사바세계의 사람의 수명을 맡아 태어날 때와 죽을 때를 모두 주관하는데 본래의 원은 매우 큰 이익을 주고자 하지만 중생들이 자기의 뜻을 알지 못하고 생사에 모두 편안함을 얻지 못하는 까닭을 묻습니다.
주명귀왕은 생명을 빼앗아가는 일을 도맡아 하니까 우리는 그런 귀신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사실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두려워하고 빼앗아 갈려는 것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면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삶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남염부제의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착한 일을 한다고 사택을 증익하면 토지신이 환희심을 내어 그 가족을 옹호하여 큰 안락함을 얻고 권속을 이익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뒤에도 생물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데 산모에게 생물을 공급하고 널리 권속을 모아 술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 노래하고 거문고 타고 피리를 불어서 아들과 어머니로 하여금 안락을 얻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제사 지낼 때라든지 생일을 치를 때, 또 아이가 탄생했을 때 산모를 위하고 아기를 위한다고 하면서 생명을 죽이고 하는 악업을 지어 오히려 짐을 지어주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삿날이나 생일날은 방생을 하러 가는 게 그 일을 맡는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고 앞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업을 짓도록 조건 지워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부러 죄업을 지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라면 아이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히려 손해를 보이는 방향으로 모임을 갖고 축하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거나 제사를 지내면서 추모하기 위해서 생명을 죽이는 일은 바른 이치에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의 업 짓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자기가 살려고 하면서 오히려 죽을 짓만 골라서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업의 경우에도 자신은 흥하려고 한다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망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지혜의 눈이 없으면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혜를 빌려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자기의 지혜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불교의 교주이신 부처님의 지혜는 한량이 없습니다. 그 무한한 부처님의 지혜를 우리가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생명을 주관하는 주명귀신이 볼 때 중생들의 행동이 참으로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아기를 낳을 때는 무수한 악귀와 귀신이 비린 피를 먹고자 하거늘 미리 사택 토지의 영험한 귀신에게 지시하여 아이와 산모를 보호하여 안락함과 이익을 얻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이러한 사람들은 안락함을 보았기 때문에 복을 베풀어 토지신에게 보답하는 것이 합당하지만 생물을 죽이고 권속을 모은 것은 재앙을 스스로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지신이란 더불어 사는 모든 조건들을 말합니다. 축생이나 곤충 할 것 없이 우리와 더불어 사는 모든 것은 토지신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명귀신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일러주고 있습니다. 주명귀신은 모든 중생들이 잘 되도록 인도하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그렇게 일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에서 염부제 사람들이 목숨을 마치게 되면 이런 사람을 선악을 묻지 아니하고 그 목숨을 마치는 사람으로 하여금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하물며 스스로 선근을 닦는다면 힘을 더하여 주는 것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염부제에서 선을 행한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를 당해서 또한 백천의 악독한 귀신이 부모로 변신하고 모든 권속으로 변하여 망인을 인접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거늘 본래 악을 지은 자들은 말해서 무엇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명이 마칠 때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을 해야 하는 이유
본문
世尊하 如是閻浮提男子女人이 臨命終時에 神識昏迷하여 不辨善惡하며 乃至眼耳히 更無見聞커든 是諸眷屬이 當須設大供養하며 轉讀尊敬하여 念佛菩薩名號하면 如是善緣으로 能令亡者로 離諸惡道하고 諸魔鬼神이 悉皆退散하리다 世尊하 一切衆生이 臨命終時에 若得聞一佛名커나 一菩薩名하며 或大乘經典一句一偈하면 我觀如是輩人은 除五無間殺生之罪하며 小小惡業으로 合墮惡趣者라도 尋卽解脫하리다 佛告主命鬼王하시되 汝大慈故로 能發如是大願하여 於生死中에 護諸衆生하나니 若未來世中에 有男子女人이 至生死時어든 汝莫退是願하고 總令解脫하여 令得安樂케하라 鬼王白佛하되 願不有慮하소서 我畢是形토록 念念擁護閻浮衆生하여 生時死時에 俱得安樂케하리니 但願諸衆生이 於生死時에 信受我語하여 無不解脫하여 獲大利益하나이다
해석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염부제의 남자나 여인이 명이 마칠 때를 당하면 신식이 혼미하여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또한 눈과 귀에 다시는 보고 듣기는 것이 없는데 그이 모든 권속들이 마땅히 큰 공양을 베풀고 높은 경문을 전독 하며 부처님과 보살의 명호를 염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선한 인연은 능히 망자로 하여금 모든 악도를 여의게 하며 모든 마와 귀신을 모두 퇴산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일체의 중생이 명을 마칠 때가 되어 만약 한 부처님의 명호나 한 보살의 명호나 혹 대승경전의 한 구절이나 한 게송을 얻어 들을 수 있다면 제가 보기로는 이와 같은 무리의 사람은 오무간과 살생의 죄를 제하고는 소소한 악업으로 악취에 떨어짐이 합당하더라도 곧 해탈을 얻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주명귀왕에게 이르시기를 「너를 크게 사랑하는 까닭으로 능히 이와 같은 큰 원을 발하여 생사 중에서도 모든 중생을 보호하니 만약 미래세 중에 남자나 여인이 있어 나거나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 너는 이 원을 퇴전하지 말고 모두 해탈시켜 영원히 안락을 얻게 하도록 하라.」
귀왕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원하옵건대 심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 형상이 마치도록 순간순간이라도 염부제 중생을 옹호하여 태어날 때나 죽을 때에 모두 안락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바라기는 모든 중생이 나고 죽을 때에 저의 말을 신수하면 해탈하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며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풀이
계속해서 부처님께 묻는 대목입니다.
이와 같은 염부제의 남자나 여인들은 임종할 때에 정신이 혼미하여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또한 눈과 귀로는 아무것도 보고 듣는 것이 없는데 거의 모든 권속들이 마땅히 큰 공양을 베풀고 존중한 경을 읽으며 부처님과 보살의 명호를 염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돌아가실 때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시려고 하는 사람의 정신이 조금 남아있을 때 경을 읽고 어떻게 하더라도 불보살의 명호를 들려주는 일은 망자를 위해서 가장 좋은 일이 됩니다. 잔치를 벌이거나 권속을 불러다가 떠드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망자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염하는 이런 선한 인연은 망자로 하여금 모든 악도를 여의게 하며 모든 마군과 귀신들이 흩어져 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경전을 읽고 부처님 명호를 이르고 염불을 열심히 하면 나쁜 귀신들이 근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임종에 다 달아서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설사 불교에 깊은 인연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경을 읽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계속해서 본문에서 일체중생이 목숨을 마칠 때가 되어 만약 한 부처님의 명호나 한 보살의 명호나 대승경전의 한 구절이나 한 게송을 들을 수 있다면 오무간지옥과 살생의 죄를 제외하고는 소소한 악업으로는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간지옥에 갈 정도의 죄업을 제외하고는 악취에 떨어지는 것을 모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웬만한 죄는 다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방법은 망자를 정말 안심시킬 수 있는 좋은 처방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망자를 제대로 위하는 것이 됩니다. 경을 읽고 명호를 부르며 염불을 하는 것이 망자를 위한다는 처방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귀왕이 부처님께 말합니다. 자신은 형상이 마치도록 중생을 옹호하여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모두 안락을 얻도록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자신의 바람을 덧붙입니다. 그것은 모든 중생이 나고 죽을 때 그를 믿고 따르면 해탈하지 아니함이 없고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명귀왕은 어떻게 하든지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리에게 강한 신념을 심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한 말을 믿고 따르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는 당부의 말을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명귀왕은 일백칠십 겁이 지나면 무상여래가 되리라
본문
爾時에 佛告地藏菩薩하되 是大鬼王主壽命者는 已曾經百千生中하여 作大鬼王하여 於生死中에 擁護衆生하나니 如是大士慈悲願故로 現大鬼王身이언정 實非鬼也라 却後過一百七十劫하여 當得成佛하리니 號曰無相如來며 劫名安樂이요 世界名淨住라 其佛壽命은 不可計劫이니라 地藏菩薩아 是大鬼王의 其事如是하여 不可思議며 所度天人도 亦不可限量이니라
해석
그때에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이르시기를 「이 대위왕은 수명을 맡은 자로 이미 백천생중을 지내면서 대구왕이 되어 생이나 사 중에도 중생을 옹호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은 대사의 자비스러운 원 때문에 대귀왕의 몸을 나타냈지만 실상은 귀신이 아니다. 이후 일백칠십 겁이 지나면 마땅히 불도를 성취함을 얻을 것이며 호를 무상여래라 하고 겁의 이름은 안락이며 세계의 이름은 정주라 할 것이며 그 부처님의 수명은 가히 겁으로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지장보살아, 이 대구왕에 관한 일은 이와 같아서 불가사의하며 제도한 천과 사람도 또한 헤아릴 수가 없다.」
풀이
이 부분은 염라왕 중 찬탄품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합니다.
본문에서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이 대위왕은 수명을 맡은 자로 이미 과거 백천생 동안 지내면서 중생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것은 지장보살의 자비스런 원력 때문에 대귀왕의 몸을 나타냈지만 실제로는 귀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대귀왕은 일백칠십 겁이 지나면 마땅히 성불할 것이니 그때 불명호는 무상여래라 하고, 겁의 이름은 안락이며 세계의 이름은 정주라 하며, 그 부처님의 수명은 헤아리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대귀왕의 일은 이와 같이 불가사의하다고 말하며 제도한 천인과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주명귀왕은 생명을 맡은 귀신으로 등장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본래 보살인데 귀신의 화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명귀왕은 이런 좋은 보살행을 하기 때문에 나중에 성불하여 무상여래라고 하는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상여래는 결국 상이 없는 여래라는 말입니다. 무상여래는 잠시 귀신의 소임을 맡아서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소임이 귀신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진짜 귀신은 아닌 것입니다. 주명귀왕은 보살 중의 상보살에 해당합니다. 말하자면 자기가 어떤 보살이라는 위치도 다 벗어버리고 무상여래라고 하는 말처럼 상이 없으니까 결국 여래로 성불하는 날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안락겁정주세계에서 무상여래로 성불한다고 했는데 안락겁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연호입니다. 또 여기서 정주세계라고 구체적인 이름을 열거한 것은 부처님께서 수기를 한 대목입니다. 수기란 결국 언제쯤 수행이 마쳐져 성불할 것이며 그때 부처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예언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언이라고 하지 않고 수기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일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주명귀왕은 매우 훌륭한 보살의 속성을 가진 분인데 귀왕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에 염라대왕이 지장보살의 위대함을 찬탄하고 또 자기가 의문 나는 점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염라왕 중 찬탄품에서는 지장보살의 위대함을 찬탄하고 마지막으로 주명귀왕을 위대한 보살정신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